[시론] 주민도 노사도 원치 않는 '희망버스'

파업 끝낸 한진重에 제3세력 개입…노사안정 깨지면 지역경제 파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6개월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지원하기 위해 '제3차 희망버스'가 30일 출발한다고 한다. 부산의 조그만 영도섬이 다시 한번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 같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국회 청문회 출석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부산 영도구가 지역구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3차 희망버스'는 출발하지 않는 것이 희망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제2차 희망버스'가 영도섬을 방문했던 지난 9일 밤부터 10일까지 장대 같은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시위대가 남긴 오물과 쓰레기의 악취 그리고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생긴 최루액 냄새가 온 영도섬을 며칠간 덮었다고 한다. '희망버스'에 대한 영도구민,부산시민들의 반대는 분명하다. 부산시장,부상상의 회장,부산시의회 회장,부산 영도구청장 등은 지난 13일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제3차 희망버스'를 강력히 비난했다.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는 "부산 경제와 영도주민에 고통을 주는 행사가 열리면 안된다"고 호소했다. 특히 본격적인 휴가 시기인 30일에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면 부상 경제와 관광산업에 큰 피해를 줄 것을 지역 주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영도조선소 근로자들도 자신들의 노사분쟁에 외부세력이 개입하지 말라는 집회를 가졌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근로자가 아니다.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조선공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해고됐고,해고된 지 10여 년이 지나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부당해고구제 신청을 냈다가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부산지법은 지난 1월17일 김진숙 씨에 대해 강제퇴거 결정을 내렸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금속비정규투쟁지부,노동해방실천연대 등 42개 좌파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희망버스기획단은 몇 달간의 노사갈등 끝에 어렵게 정상화의 길로 접어든 한진중공업 경영상황을 더욱 어렵게 해 회사로 하여금 정리해고를 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2006년 이후 한국과 중국에서만 120개가 넘는 조선소가 설립되는 등 공급과잉 상황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세계 조선업계는 현재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수 있는 대형조선소만이 경쟁력이 있다. 협소한 부지 때문에 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한진중공업은 국내 대형선사들에 비해 1인당 조립량은 최저수준이나 노무비율은 높아 원가경쟁력이 떨어진다.

한진중공업이 2008년 8월 이후 특수선을 제외하고 수주를 하지 못해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해외에 조선소가 있으면 정리해고를 하지 못한다는 기존의 노사합의에도 불구하고 부산지법이 지난 6월13일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적법한 것으로 판결한 근본적인 이유다.

희망버스기획단에 참여하는 단체의 하나인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가 지향하는 대로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우리 모두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리해고가 필요한 상황에서 정리해고가 지연된다면 결국 더 많은 근로자들이 정리해고 당하는 상황을 만들 뿐이다. 한진중공업은 노조 파업이 끝난 직후에 아시아 지역 한 선사와 2억5000만달러의 건조의향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외부 힘에 의해 노사 안정이 흔들린다면 언제든지 해지될 수 있고,결국 한진중공업은 현재 남아 있는 인력에 대해서도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대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지어 국내 일자리를 해외로 빼돌린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제3차 희망버스'를 타지 않았다. 시위로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영도 지역 주민도 한진중공업 노사도 원하지 않는 '희망버스'를 출발시켜 현실성 없는 요구나 구호가 난무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는 것은 지역주민과 한진중공업 근로자들에게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다.

박영범 < 한성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