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월급 없이 얼마나 버틸까?
입력
수정
비상예비자금 없어 모두가 불안…일자리 창출을 최고의 가치로노동조합원들이 파업에 들어간 사업장.신문 기사만 보면 회사가 결단날 것 같은데 막상 현장에서 노무담당자들을 만나보면 한가로운 표정인 경우가 많다. 이유를 물어보면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월급 안 주고 2개월이면 끝난다. "
실제가 그렇다. 월급이 끊기고 한 달이 지나가면 사원아파트 곳곳에서 부부싸움이 벌어진다. "학원비도 못 내는데 뭔 파업이냐.그러다 잘리면 어찌 살거냐!" 안그래도 회사와의 '투쟁'에 지쳐 있는데 집에서까지 압박하니 조합원들의 불안감이 커가기 시작한다. 2개월째 월급이 안 나오면 대부분 생활비를 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형편이 된다. 이탈자가 늘어나고 결국 노조는 항복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비참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노사 갈등은 그러니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해도 현실적인 결론에서는 근로자들의 생계비를 담보로 한 싸움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노동조합이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것이 2개월치 월급이다. 당신은 어떤가. 지금 받고 있는 급여나 정기적인 소득이 갑자기 끊어지면 몇 달을 버틸 수 있는가.
보험업계에서는 불요불급한 저축이나 자기계발비를 제외하고 한 가족이 매달 필요로 하는 생활비 교육비 등을 '비상예비자금'이라고 부른다. 이 비상예비자금이 맞벌이의 경우 3개월치,외벌이의 경우 6개월치는 확보돼 있어야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보험업계 전문가는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가정의 90% 이상이 비상예비자금이 충분히 확보돼 있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한다.
경기가 나빠지고 고용이 불안해지면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살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일벌레로 살면서 반년도 버티지 못하는 게 우리 현실이라니 처량하지 않은가. 거기에다 50대 중반이면 주된 직장에서 은퇴해 '자칫하면' 100세까지 가는 초고령사회에 사는 우리다. 이런 시대의 리더 역할은 국민 모두가 갖고 있는 이런 불안감을 씻어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내 일자리가 당장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혹 문제가 생겨도 재취업이나 창업을 쉽게 할 수 있고 그래서 가족의 안정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본적인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런 만큼 이 정도는 정부든 민간이든 지방자치단체든 사회단체든 리더라면 반드시 대전제로 가져야 할 당위가 돼야 한다. 국민 일자리 창출과 고용 유지가 기본 목표가 돼 있어야 정부가 하는 일에도 '영(令)'이 서는 것이다. 그것과 상관없는 일이거나 혹은 일자리에 위협이 되는 것인데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내놓은 정책은 정부 힘을 과시하려는 규제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월급 없이 두세 달을 못 버티는 많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씻고 노력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비전을 심어주는 게 경제시대를 사는 리더다. 일자리 창출,취업,재취업,창업 같은 단어가 모든 리더들이 언제 어디서든 빠뜨리지 않는 아젠다로 빨리 자리잡아야 한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정부와 재계의 갈등,노사 갈등,정치집단 간 갈등 등등이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생계걱정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 같아 하는 얘기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