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물폭탄'…도시기능 마비] 덥고 찬 공기층 '충돌'…아래위로 휘돌며 '물폭탄' 퍼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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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지성 게릴라 폭우 왜 잦나
남서풍 타고 대기 상층에 습한 공기 유입…하층부 건조한 공기와 부딪쳐 불안정 심화
사할린 고기압이 공기 흐름 막아 집중 폭우
지난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서울엔 500㎜에 육박하는 비가 내렸다. 1907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7월에 이틀간 내린 강수량 기준으로는 100년래 가장 많은 비다.
서울 관악구에선 27일 1937년 이후 70여년 만에 최대인 시간당 113㎜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호우주의보가 12시간 강수량이 80㎜ 이상일 때 발령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1시간 만에 그 이상의 물폭탄이 투하된 셈이다. ◆"일시적인 대기 불안정이 원인"
이번 집중호우의 특징은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 등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비를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25일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강한 남서풍을 타고 유입된 데 이어 대기 중 · 하층의 건조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대기 불안정이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지표면과 가까운 하층 공기가 상승하면서 상층의 찬 공기와 만나면서 대기 불안정이 심화됐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따뜻한 공기가 아래쪽에 있고 찬 공기가 위에 있으면 온도차를 해소하기 위해 따뜻한 공기는 올라가고 찬공기는 내려오는 대류 현상이 발생한다. 이 현상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많은 비가 온다는 설명이다. 정관영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물이 냄비에서 끓을 때 부분적으로 튀는 곳이 있는 것처럼 대기중에서 대기순환이 발생하는 지점에는 소나기 구름이 생기면서 그렇지 않은 지역과 강수량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사할린 부근에 머물며 한반도 대기 순환을 가로막고 있는 저지고기압(blocking high)으로 인해 기압계의 흐름이 정체되면서 좁은 지역에 강수가 집중돼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대기 불안정으로 형성된 소나기 구름이 중부 지역을 덮고 있는 형국이다. 반면 남부 지방은 상층의 찬 공기가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에 막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해 대기 불안정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집중호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승배 기상청 대변인은 "예년에도 장마가 끝난 이후 집중호우가 찾아오곤 했다"며 "지구온난화에 따른 엘니뇨와 라니냐 등과 같은 기상이변 때문에 빚어진 현상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기상청은 "올해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의 활동이 예년에 비해 예측이 어렵다"며 "올여름 내내 이 같은 집중호우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학계,지구 온난화에 따른 가능성
일각에선 이처럼 집중호우가 자주 내리는 이유가 올해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최근 들어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한반도 아열대화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2070년까지 지구 온도가 2도 올라간다고 가정하면 강우 강도가 2.5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올해 집중호우도 여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김광렬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이번 집중호우를 기상이변 때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지구온난화에 따라) 지표면과 하층 대기 사이의 에너지 교환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 순환이 활발해지면서 비가 오는 빈도나 양이 늘어나고 우기가 빨라졌다는 얘기다.
기상청도 이번 집중호우가 기상이변으로 빚어진 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2000년대 들어 한반도가 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정 예보관은 "한반도 기후가 더워지면서 국지성 호우가 아열대 지방에서 내리는 '스콜'처럼 변화하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