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8시 출근ㆍ5시 퇴근…제가 먼저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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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관, 8·5제 도입 언급…재정부에 유연근무 신청
내수 살리려는 강력 의지…민간과 현실 괴리 '걸림돌'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가급적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저녁 약속을 오후 6시로 잡아 5시가 지나면 사무실을 떠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오전 8시까지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하는 '8 · 5제'를 공공 부문에서 도입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박 장관은 실제로 이날 재정부 인사과에 앞으로 오전 8시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겠다는 유연근무 신청서를 제출해 '1호 유연근무 장관' 기록을 갖게 됐다.
박 장관이'8 · 5제' 도입을 직접 거론한 것은 내수 활성화와 삶의 질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뜻으로 해석된다. 박 장관은 "선진국은 하절기에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며 "우리도 근무 시간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내수 활성화 의지 강조
정부가 8 · 5제를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말 올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공공 부문의 근로 시간을 현재 '오전 9시~오후 6시'에서 '오전 8시~오후 5시'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내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삶의 방식 전환' 차원에서 포함됐던 것인데 박 장관이 다시 한번 언급한 것이다. 퇴근 후 여가시간을 활용해 자기 계발을 하거나 가족과 재충전 시간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내수 살리기에 '올인'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까지 최근 국내 여행을 호소할 정도로 수출과 내수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성장 중심의 저금리 · 고환율 기조가 유지되면서 수출은 금융위기 극복을 주도할 만큼 성장했지만 내수는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7년 68.3%에 달했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내수 소비 비중은 2009년 50.3%에서 지난해에는 47.6%로 떨어졌다. ◆현실과의 괴리 극복이 관건
그러나 공공 부문에서 8 · 5제가 당장 적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공 부문의 근무 시간이 바뀌면 정부 부처를 상대해야 하는 민간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하루아침에 일률적으로 근무 시간을 바꾸기는 어렵더라도,먼저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행정안전부의 유연근무제와 정시 퇴근을 활성화하는 차원으로 접근하자"고 부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8 · 5제를 실시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도록 정시 퇴근 등을 지켜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8 · 5제 도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출근만 빨라지고 퇴근은 그대로 늦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는 공무원이 몇 명이나 되겠냐는 것이다. 경제부처의 한 사무관은 "장관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자료를 준비하는 데만 오후 10시를 넘기기가 예사"라고 말했다. 삼성의 경우 2000년대 초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방침에 따라 7 · 4제가 도입됐으나 난관에 부딪치며 흐지부지됐다가 2009년 6월에야 8 · 5제를 기본 형태로 한 자율근무제가 시행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 교수는 "현장의 모든 공무원이 8 · 5제를 따르기는 쉽지 않다"며 "민원인 및 기업과의 근무시간 차이도 큰 불편을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