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치닫는 건강보험] 노인 의료비, 청장년층의 3배…과다지출에 재정 '바닥'

● (1) 고갈되는 건보재정

"보험료 인상만으론 부족문제 해결 못해"…재정 충당하거나 후대에 빚 떠넘길 판
저출산 ·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건강보험 적자 문제가 사회에 큰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인 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의료비는 급증하고 있지만 건강보험료를 낼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비용을 보험료로 다 메우려면 2050년에 소득액의 38.17%를 내야 한다는 보고서를 보건사회연구원이 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문제는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것은 사회적인 반발이 크고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세금으로 메우거나,재정적자를 내 후대에 빚을 떠넘기는 방법밖에 없다는 얘기다. ◆저출산 고령화로 의료비 급증

건강보험 재정을 고갈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노인 의료비다.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3조4472억원으로 총 진료비(10조8949억원)의 31.6%를 차지했다. 전체 건강보험 적용인구(4900만명) 대비 노인 인구(501만명)비율은 10.2%다. 노인이 청장년층에 비해 진료비를 3배 이상 쓰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노인 의료비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이다. 노인의 월 진료비는 2004년 11만4203원에 불과했지만 지난 1분기에는 22만8919원으로 2배가량 늘었다. 85세 이상 노인 의료비는 2004년 월 7만6686원에서 지난 1분기 26만8509원으로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신영석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험실장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노인 의료비 증가 속도가 앞으로 계속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 현상에 따른 의료비 증가율을 최소화하기 위한 각종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험료율 올려도 해결 안돼

의료비가 늘어나더라도 그에 맞춰 보험료율을 인상하면 재정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수익자 비용부담의 원칙에 따라 가입자들이 늘어나는 지출액만큼 보험료를 더 내면 된다. 문제는 보험료율을 인상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으로 의료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소득액 대비 4.31%였던 보험료율을 계속 인상해 지난해 5.33%로 높였는데도 1조3000억원의 적자가 났다. 올해 보험료율은 5.64%로 또 올랐으나 여전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 부과체계가 직장 및 지역 가입자로 이원화돼 있는 것도 문제다. 지역가입자는 소득 파악이 쉽지 않다. 건강보험은 사실상 직장가입자들이 낸 돈으로 굴러간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보험료율 인상에 따른 부담이 근로자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정우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직장인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2000년 직장의보와 지역의보가 통합돼 보험료율을 올리기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건강보험료율은 독일(14.2%) 네덜란드(12.15%)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2025년에는 12.51%로 서유럽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고,2050년에는 소득액의 3분의 1이 넘는 돈을 보험료로 내야 할 상황이다.

◆보장성은 지속적으로 확대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를 계속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5년 61.8%에서 2009년 64%로 상승했다.

정부는 보험료율 인상으로 2008년 1조3667억원의 흑자를 내자 차상위계층(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인 가정)의 의료비 지원액을 건강보험공단에 떠넘기기도 했다. 건보공단이 대신 돈을 내준 차상위 계층 의료비는 지난해 7751억원으로 전년보다 47% 증가했다. 이혁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는 "지금 보험료는 건강보험 제도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규모로 디자인돼 있는데도 정부는 2005년부터 지속적으로 보장 범위를 확대해 왔다"며 "현행 '저부담-저수가-저급여'의 틀로는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제도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