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영주유소'는 시장에 대한 테러다

이윤 동기 없어 유통효율 기대난…저질품 도입 땐 되레 소비자 피해
최근 물가고로 인해 서민생활의 부담이 크게 늘고 있다. 물가가 크게 오르는 주요 요인의 하나는 유가 때문이다. 지난 4월7일 정유4사가 3개월 한시적으로 ℓ당 100원 할인을 시작하면서 휘발유 가격은 다소 하락했지만 정부 주도에 의한 억지성 할인판매가 끝난 뒤 다시 올라가기 시작해 지금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휘발유 가격이 사상 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유가관리에 막중한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지식경제부 내 석유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지식경제부 장관은 무리한 공언까지 해가며 관련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또 이와 더불어 일반 주유소보다 기름값이 저렴한 '대안주유소'를 육성하려 한다고 한다. 대안주유소 구상의 핵심은 기존의 유통구조를 깨서 기름값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대안주유소는 공익단체와 공공기관,대기업 등이 운영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으로 국 · 공유지나 공영개발 택지에 세워 초기 투자비를 낮추고,석유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이 국제시장에서 석유제품을 싸게 들여와 대안주유소에 공급,가격을 내린다는 계획이다. 참여업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석유제품 수입을 위한 환경기준 완화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지원을 통해 전체 주유소의 10% 수준인 1300곳의 대안주유소를 세울 계획이라 한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정부가 최근 광범위하게 벌이고 있는 시장개입의 전형적인 행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는 금융규제 및 재정지출 확대와 더불어 시장개입을 강화해 오고 있다. 초과이익공유제나 등록금 상한제,기업형 슈퍼 규제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과거 역사의 교훈이 말해주듯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에는 항상 부작용이 따른다.

대안주유소의 경우에도 실효성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이 더 우려된다. 현재 국제 휘발유 가격은 국내 가격보다 다소 낮지만 관세나 부과금을 고려하면 큰 차이가 없다. 대형 시설을 기반으로 하는 국내 정유사들보다 생산효율성이 특별히 높지 않는 한 국제시장의 현물가격이 더 유리한지는 의문이다. 저가 제품을 도입하기 위해 저질의 제품이 수입된다면 오히려 소비자에게 피해가 간다. 더욱이 이런 저질의 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환경기준까지 완화한다면 문제가 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현재 1만3000개에 달하는 주유소만으로도 이미 적정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되는 상황에서 대안주유소의 설립은 기존 주유소의 무더기 폐업을 가져올 수 있다. 주유소의 과도한 폐업은 존립 주유소의 절대적 숫자를 줄여 추후 가격상승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과당경쟁으로 폐업하는 주유소가 속출하는 가운데 대안주유소에만 보조금과 특혜를 주는 것은 자율경쟁시장 원리에 어긋난다.

대안주유소 도입으로 인한 가격인하 효과는 제품의 공급과정과 주유소 운영이 기존 유통체제보다 더 효율적일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대안주유소는 일종의 '국영주유소'로 민간기업이 갖는 이윤동기에 의한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석유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에도 석유제품의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나 수송 등의 분야에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의 유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시장개입과 같은 공급 측면의 무리한 수단을 쓸 것이 아니라 수요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시장개입에 의한 가격인하는 오히려 석유소비를 증대시켜 가격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석유 소비구조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유가 상승 억제를 위해서 우선 비효율적인 소비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 대중교통이나 소형차량의 이용 증대를 통해 석유소비를 절감하고 각종 에너지 절약 정책을 통해 수요를 줄이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다. 국민이 사용하는 소비제품의 가격이 높다고 해서 정부가 매번 국영사업을 통해 제품가 인하를 유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의 시장개입이 도를 지나친 것으로 여겨진다.

김지수 < 영남대 경영학 교수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