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32년 만에 金 샀다] 韓銀 "달러약세 따른 외환보유액 다변화"…뒷북 매입 논란도

달러화 자산 비중 64%…여전히 높은 편
中·印 등 신흥국은 4~5년 전부터 '金사냥'

금 보유 문제는 한국은행의 해묵은 숙제였다. 금값이 오를 때마다 한은 밖에선 "왜 금을 안 사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한은은 대외적으로 "금은 적절한 투자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주식이나 채권과 달리 금은 이자나 배당을 받을 수 없고 급할 때 손쉽게 처분할 수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한은이 갑자기 입장을 바꾸며 금 매입에 나섰다.

◆달러화 보유 비중 축소한은은 금 매입 배경으로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가 넘으면서 금 보유 여력이 커졌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2004년 이전에는 외환보유액이 1000억달러 정도였고 2004~2007년에는 한은 수지가 적자여서 금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고,2008~2010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동성 확보가 시급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하지만 시장에선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한은도 불가피하게 달러화 비중 축소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국내 1위 금 거래 업체인 한국귀금속쓰리엠의 김안모 대표는 "최근 금값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데다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번 금 매입은 결국 달러 약세에 따른 외환보유액 다변화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최은규 한국금거래소 부사장도 "미국의 부채 협상이 타결됐지만 궁극적인 재정 위기 탈출안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며 "결국 달러화 지위가 약화될 것인 만큼 한은도 이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 스스로도 금 매입의 장점으로 "인플레이션과 미 달러화 약세에 대응해 외환보유액의 자산가치 하락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외환보유액 중 달러화 자산 비중이 63.7%로 너무 높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한은은 위안화 투자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초 중국 외환당국에 '위안화 매입 자격을 달라'고 신청하기도 했다.

◆"상투 잡은 것 아니냐"논란

한은의 금 매입 시기에 대해선 "좀 더 일찍 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은의 금 매입단가는 트로이온스당 1540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지난 1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금 가격이 1621달러에 마감됐으므로 한은은 지난 6~7월 매입한 가격에 비해 5.2%가량 평가이익을 내고 있다. 하지만 금값은 2000년 초만 해도 트로이온스당 280달러에 불과했다. 외환보유액이 2700억달러나 됐던 2009년에도 1000달러 안팎이었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이미 4~5년 전부터 금을 늘리기 시작했다. 황일두 외환선물 국제영업팀장은 "각국 중앙은행들이 최근 수년간 금 매입을 늘린 점을 감안할 때 한은이 이제서야 금 매입에 나선 것은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한은 내부에서도 금 매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올해 초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일부 금통위원이 "금 매입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감사원은 지난해 11월 "한은의 외화자산 운용이 달러,유로,엔에 집중돼 있다"며 "금과 위안화 투자 확대를 금통위에서 논의할 것"을 권고했다.

◆금값 전망 '5000달러 vs 1300달러'
세계 7위 외환보유국인 한국의 금 매입은 국제 금 시장에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주요 해외 투자은행(IB)의 향후 금값 전망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도이치뱅크는 "금값이 내년에 트로이온스당 최고 2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금값이 2020년에 5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파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내년 금값이 1690달러 수준으로 지금과 비슷할 것으로 관측했다. JP모건과 씨티그룹은 금값이 1300~1400달러 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금값 상승을 전망하는 측에선 금 시장의 수급 불안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광산 노후화 등으로 공급은 크게 늘지 않는데 수요는 꾸준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신중론자들은 금은 이자나 배당수익이 없어 결국 투자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주용석/김일규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