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키운 '암탉',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안부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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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신기록
어른에겐 감동, 아이에겐 웃음…9월 중국 개봉
"정말 좋아요. 아이들이 봐도 좋지만,어른들이 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영화예요. "(bestnblue)
"매우 한국적이고 맛깔나고 감성적이고 또 감동적이었습니다. 영화 보며 이렇게 눈물짓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태권소년)트위터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 '마당을 나온 암탉'(감독 오성윤)이 토종 애니메이션 사상 최다 관객이 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2000년대 들어 제작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중 처음으로 수익을 거둘 가능성도 커졌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이 작품은 역대 최단기간인 8일 만에 관객 50만명을 동원했고,5일까지 70만명을 불러모았다.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은 "6일 중에 '로보트태권브이' 디지털 복원판의 72만명을 넘어 국산 애니메이션 최다 관객 기록을 다시 쓸 것"이라며 "이런 추세라면 총제작비 50억원을 거둬들일 수 있는 손익분기점 150만명 선도 넘어설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중 최대 성공작은 1976년 개봉한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태권브이'.당시 23만명을 동원해 그해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고,여러 편의 속편도 제작됐다. 그러나 이후 할리우드 영화의 공세에 밀려 다른 국산 애니메이션 성공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다음달 중국 극장가에도 걸릴 예정이다. 한 · 중 동시 개봉 계획이었지만 중국 측 사정에 따라 미뤄졌다. 지금까지 중동 2개국에 판매됐는데 가을철 해외마켓에서 수출상담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영화의 흥행성공 요인은 재미와 감동에 있다는 평이다. 100만부가 팔린 황선미 작가의 동화를 원작으로 만든 이 작품은 양계장을 탈출한 암탉 '잎싹'이 버려진 청둥오리 알을 품어 '초록'을 부화시킨 뒤 험난한 야생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른과 아이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아이들은 아기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며 모험을 펼치는 초록 캐릭터에 흥미를 느낀다. 원작에서는 비중이 떨어지는 초록의 역할을 늘린 게 주효했다. 엄마들은 초록을 위해 자기 몸을 내주는 잎싹의 헌신적인 모성애를 공감한다. "난 왜 한번도 날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서로 달라도 사랑할 수 있는 거야" 등 자유의지와 사랑에 관한 대사들은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극중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잡아먹어야 하는 대자연의 생태계를 잘 보여준다. 권선징악만을 강조하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다른 점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도 반영한다. 잎싹이 초록을 키우는 설정은 점점 커지고 있는 다문화사회의 분위기와 직결된다. 초록이 청둥오리 무리에서 겪는 수난은 '왕따문제'를 표현했다.
애니메이션 업계와 영화계가 협업해 일군 성공 사례로도 꼽힌다.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인 오돌또기가 그림을 그렸지만 실제 기획과 진행은 '공동경비구역' 등 숱한 실사 흥행영화를 만들었던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맡았다. 광고기획사 출신인 최종일 아이코닉스 대표가 오콘이란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협업해 방송용 애니메이션으로 가장 성공한 '뽀롱뽀롱 뽀로로'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들은 아티스트 성향이 강해 대중을 분석하고 마케팅을 수행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외부 인재들이 이런 부분을 보완해 상품성을 끌어올린 것이다.
심 대표는 "제작기간이 6년이나 걸린 만큼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양측의 노하우를 잘 혼합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