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기금 확대 놓고 유로존 '남북 갈등'

재정 탄탄한 북유럽 "왜 우리 돈 축내나"
獨ㆍ佛ㆍ스페인 긴급 전화회의…"글로벌 공조 필요"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핵심 멤버인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번지는 가운데 구제금융 규모 확대를 놓고 유로존 국가들이 사분오열하고 있다.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들은 기금을 하루빨리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재정이 탄탄한 나라들은 더 이상 돈을 내놓을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EU 수뇌부 "EFSF 늘려야"5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와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은 유로존 재정안정기금(EFSF)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은 이날 회원국들에 보낸 성명을 통해 "이제는 유로존 핵심 국가들도 금융위기에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EFSF 규모 확대를 촉구했다. 줄리오 트레몬티 이탈리아 재무장관도 "유럽이 시장 위기를 극복하려면 구제금융 기금 확대에 빨리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FSF는 유로존 회원국이 경제위기에 빠질 경우에 대비해 마련해놓은 기금이다. 유로존 정상들은 EFSF로 채무 위험에 처한 회원국의 국채 등을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EFSF 규모는 4400억유로로 경제 규모가 큰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를 구제하기에는 부족하다. EFSF 기금 규모를 2~3배 늘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핀란드 · 슬로바키아도 확대 반대독일 네덜란드 등 재정이 탄탄한 국가들은 EFSF 규모 확대에 부정적이다.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과 슬로바키아도 바로수 위원장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빚쟁이' 국가들을 위해 EFSF 규모를 확대한다는 것은 우량 국가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총재를 지낸 틸로 자라친은 이날 호주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EU는 과도한 채무를 진 국가들에 돈을 대주는 '송금연합(Transfer Union)'이 돼가고 있다"고 비꼬았다. 자라친 전 총재는 "EFSF 규모 확대는 유럽 지도자들에게 10년 정도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겠지만 결국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의 납세자들이 돈을 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EFSF 확대안이 각국 의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결론이 나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바빠진 유럽 정상들유럽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5일 전화 회의를 갖고 유럽 금융시장 상황을 논의했다. 올리 렌 EU 경제 · 통화정책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요 20개국(G20) 또는 주요 7개국(G7) 등 글로벌 차원의 협력으로 금융 시장의 혼란에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최근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금리가 급등한 것은 경제적 펀더멘털로 설명할 수 없다"며 각국 정부의 공조를 통한 투자심리 안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다음주에 유동성 공급 확대를 위한 긴급 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