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격통제' 망상이 시장 죽인다

정부 인위적개입 수급불안 가중…원가공개 압박은 인기 영합일 뿐
서기 301년 로마제국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가격통제 정책을 실시한다. 황제는 제국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상한가격을 정하고 이를 어기는 자는 엄벌에 처했다. '시장이나 일상적인 상거래에서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는 현상이 풍년이 든 해에도 전혀 진정되지 않는 것은 돈벌이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탐욕에 원인이 있다'로 칙령은 시작된다. 의욕은 앞섰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당초 목표했던 인플레이션 억제는 완전히 실패했다. 지하경제 발달,물물교환 회귀와 화폐경제 후퇴가 맞물리면서 제국의 몰락만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원가에 기반한 가격통제로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을 억제하고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허황된 시도는 역사에서 끈질기게 반복되는 사안이다. 2006년 논란이 됐던 아파트분양원가 공개도 마찬가지다. 지지자들은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높은 가격에 분양해 폭리를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원가에 일정수준 이익을 더해 분양가를 책정해야 한다는 논리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박탈감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선동적 구호로서만 강렬했을 뿐이었다. 현실 대책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시장은 알고 있었다. 건설회사의 아파트 분양에는 재고부담,즉 미분양의 리스크가 따르기에 분양 원가는 결코 사전적으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공급하는 100가구가 모두 분양된다는 전제로 사전적 분양원가는 산정할 수 있지만,실제로는 미분양에 따라 아파트 분양원가가 급변한다. 이는 100가구 모두 분양됐을 때와,절반인 50가구가 미분양으로 남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따라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제도를 굳이 도입하려면 미분양 전량을 국가가 흡수해야 한다. 미분양이라는 리스크가 없어진다면 건설업자도 소위 적정이윤에 만족하겠지만,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원가를 공개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리스크를 그대로 두고 이윤만 제한하기 때문에 공급을 줄여 수급불안만 가중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이는 모든 재화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소비자 가격에 생산제품이 일정비율 팔린다는 전제에서 원가산정은 가능하지만,실제로는 판매율 변동에 따라 재고가 발생하기 때문에 원가는 재고 처리가 끝난 후 사후적으로 확정된다. 의류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시즌에 못 판 재고를 이월상품으로 밀어내고 땡처리까지 해야 원가와 이윤이 최종 결정된다. 더욱이 동종업종이라도 원가구조가 동일한 기업은 없다. 지구상 60억의 인구 중에 똑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업이 보유한 자산의 구입원가,임금 등 변동비 구조,자본비용 구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기업의 원가는 비슷해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모두 다르다. 원가를 구성하는 요소가격이 끊임없이 변동하므로 원가는 고정된 화석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물체이다.

지금 원가공개의 유령이 다시 나타나 세상을 현혹시킨다. 반값 등록금 논쟁이 붙인 불길이 물가안정으로 번지면서,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입을 모아 특정제품의 원가공개를 통해 공급자의 폭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가에 근거한 적정이윤을 산출하고,이를 감안해 가격통제를 가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허상에 불과함을 역사와 경험은 증명하고 있다. 공급자에게 시장경제의 기본권은 원가통제와 가격결정의 자유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헌법 119조 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추상적 선언을 기업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해석하면 창의적으로 원가를 통제하고 가격을 결정하는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다. 기업이 외부적 압력으로 원가를 공개하고 가격을 통제받는다면 이는 헌법이 규정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가 아니고,당연히 시장경제도 아니다. 원가공개가 정의롭다는 반(反)시장적 포퓰리스트들의 본질을 직시해야 할 때다.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