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헤이그 밀사' 발자취 찾는 33년 뱅커

김동진 헐버트 기념사업회장, 유언장·부고 전보 공개

아리랑 음계를 처음으로 오선지에 그린 사람.최초의 순한글 교과서를 쓴 사람.조선왕조 고종이 독립운동자금을 찾아오라며 위임장을 써줄 정도로 신임했던 사람.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한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밀사 3인을 도운 '제4의 밀사'.과연 누구일까. 한국인이 아니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다.

헐버트 박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10년 넘게 뛰어온 사람이 있다. 김동진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초빙교수(61)다. 김 교수는 1999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발기인으로 참여,2004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33년 동안 금융회사에서 일한 뱅커였다. 1978년 미국 케미컬은행에서 은행가로 첫발을 뗀 뒤 체이스맨해튼은행 한국 대표,JP모건체이스은행 한국 회장,외환은행 부행장,SC제일은행 부행장 등을 지냈다. 최근엔 프라임저축은행장을 지내다 지난 4월 그만뒀다. 5일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에서 헐버트 박사 62주기 기념 행사를 연 김 교수는 "대학 시절 헐버트 박사가 쓴 '대한제국멸망사'를 읽으면서 책을 통해 그를 처음 만났다"고 회상했다. 헐버트 박사가 조선에 입국한 것은 1886년이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지만 단순한 교사로 머물지 않고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다. 일본이 기밀문서에 '미국인 헐버트는 시종 우리의 정책을 방해하는 자'라고 쓸 정도였다.

김 교수는 헐버트 박사의 한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느끼고 감동해 그의 삶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헐버트 박사의 모교를 찾아 각종 기록을 살펴보기도 하고,그가 언론에 기고한 글을 찾기 위해 100여년 전 미국 신문 · 잡지를 뒤지며 씨름했다. 헐버트 박사가 다트머스대 졸업 후 신상기록부에 쓴 글도 그가 찾아냈다. 기록부엔 "나는 1800만 한국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싸워왔으며 한국인에 대한 사랑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다"라고 써 있다.

일본 침략을 막아 달라는 고종의 요청을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거절하자 헐버트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글을 썼다. 기고문엔 "루스벨트 대통령은 조 · 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친구의 나라,한국을 배신한 사람이다"라는 비판의 글이 담겨 있다. 김 교수는 이 기고문을 찾아내 세상에 알렸다. 그는 이날 기념행사에서 지난 5월 헐버트 박사의 손녀로부터 입수한 유언장과 한국에서 숨진 헐버트 박사의 유족에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보낸 영문 전보를 공개했다. 전보는 "부친이 여기 올 때부터 상태가 안 좋았다. 최선을 다해 조치했으나 (돌아가셔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는 내용이다.

김 교수는 일본이 2011 방위백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명기하는 등 영토도발을 계속하는 지금 헐버트 박사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헐버트 박사는 일본이 무사적 기질 때문에 국제평화를 해치는 경향이 있다고 봤는데 지금의 영토도발이 그런 꼴"이라며 "한국인은 합리적 기질이 있다고 본 만큼 일본의 도발에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헐버트 박사가 1905년에 쓴 '한국사'를 보면 대마도가 신라의 속국이었다는 말이 나온다"며 "이런 부분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