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차라리 국가 MRO인 조달청부터 없애보자…

MRO 없어지면 불공정 부패 만연…원가절감은 기업 경영의 본질
대기업은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에서 손을 떼라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납품가를 후려치며 양극화를 초래하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결국 청와대까지 MRO를 마녀요 지하경제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만일 이 같은 주장들이 정당하다면 대기업 MRO를 공격하기에 앞서 국내 최대 MRO인 대한민국 조달청부터 폐쇄하자고 주장해야 옳다. 실제로 조달청을 없애고 각 지자체들이 직접 조달하자는 지역 중소업자들의 요구가 엄청나게 쌓여있다. 그렇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자.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조달청의 투명 공정한 조달이 없어지면 정치권력을 타고,지연 학연 등 연줄을 타고 무차별적인 부패와 비리가 막을 올릴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지방의회가 감시하면 된다지만 그들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지금도 단체장 선거가 끝나면 연필과 화장지를 납품하는 업자들까지 줄줄이 물갈이된다는 판국이다. 정치판이 이토록 시끄러운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결국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해왔던 중소기업은 입찰 문턱에도 가보기 어렵다. 이권 집단들이 암약하면서 비효율과 불공정은 독버섯처럼 번져나간다. 삼성 IMK는 매출 1조5000억원이지만 영업이익률은 2.5%다. 통합구매를 통해 부패를 없애고 원가구조를 혁신하면서 세계적 기업이 되어 있다. IMK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수는 1만1000개,다루는 품목 수는 40만여종이다. IMK를 이용하는 기업에는 NHN,아모레 등 수많은 국내기업과 ING 스탠다드차타드 푸르덴셜 등 외국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직접 구매보다 IMK가 훨씬 공정하고 효율적이어서 기꺼이 2%의 수수료를 지불한다. 매출의 14%는 수출이다. 조달청조차 일부 조달을 IMK에 위탁한다. 누구든지 부패와 불의가 걱정된다면 IMK를 이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중국이 진정 부패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부패사범을 무차별 사형시킬 것이 아니라 IMK에 국가 조달을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중국의 부패 동맹들은 결사 반대할 것이다. 그게 중국이다. 지금 그런 수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어처구니 없는 반(反)MRO캠페인이다.

자,이제 IMK를 없애버리자.그렇게 되면 당장 1만1000개 선량한 중소기업들이 거래선을 잃게 된다. 급기야 삼성마저 국회의원들의 청탁 전화를 받아가며 연줄 거래로 복귀할 것이다. 중소기업가들은 룸살롱을 예약하고 공무원들의 주말연찬회에 더 열심히 쫓아다니는 것으로 경쟁하게 된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그런 좋은 세상이 드디어 도래했다! 삼성의 국제경쟁력도 서서히 잠식된다. 바로 이게 반MRO의 억지 동반성장론이 초래할 진정한 풍경이다. 조달은 좋은데 원가 후려치는 것이 나쁘다고? 이는 거짓말이다. 경영의 본질은 원가 관리다. 모든 경영자에게 원가는 목숨과 같다. 중소기업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가정 주부조차 콩나물 가격을 흥정하는 법이다.

IMK를 인수할 곳이 외국MRO밖에 없다는 웃기는 상황이다. 한국 기업의 원가구조를 해외에 까발린다? 차라리 중소기업 단체가 인수하면 어떨까? 이는 중소기업 자신을 위해서도 금물이다. 중기단체가 IMK를 지금처럼 경영한다면 삼성이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결국 후려치지 않고 소위 적정가격을 보장해야 한다. 자,과연 적정가격이라는 것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누가 이 문제에 답을 달라.소위 적정가격이 보장되면 장외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경쟁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은밀한 곳으로 옮아갈 뿐이다. 반MRO소동은 죽어라고 노력해도 먹고살기 힘든 중소기업가들의 감정 토로일 뿐이지 결코 옳은 답이 될 수는 없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MRO와는 관계가 없다. 이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징벌적 상속세와 함께 논의해야 할 전혀 별개 사안이다. 삼성 SK 등이 줄줄이 MRO 사업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실로 실망스럽다. 그런 나약한 정신이었다는 것인지.

정규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