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디자인왕' 키운 WCU 사업단장

● 이근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이근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52)는 항상 '디자인은 논리적인 창조'라고 강조한다. 디자인이 과연 '예술일까 기술일까' 하는 질문에 단호하게 '디자인은 논리적이다'고 답한다. 디자인에 필요한 영감을 키우는 데는 논리적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지난달 '페라리 디자인왕'에 오른 홍익대생 3명을 배출한 숨은 주인공이다. 그는 대우자동차 디자인 포럼 팀장,대우그룹 영국 디자인 연구소 파견 팀장 등을 지내며 1986년부터 15년 동안 자동차 디자인 실무를 했다. 2001년부터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87년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와 1992년에 영국 왕립미술학교에서 산업디자인 석사학위를 땄다. 이 교수는 '2011 페라리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안드레(26),김청주(23),이상석(21) 씨 등에게 '논리적 디자인'을 훈련시켰다. 팀장인 안씨는 이 교수 밑에서 월드클래스유니버시티(WCU) 연구조교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이 교수는 WCU 홍익대 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WCU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2008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사업이다. 5년간 36개 대학에 총 8250억원을 지원한다. 이 교수는 WCU 사업의 하나로 '디자인 프로세스 탬플레이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일련의 논리적 과정을 거친 뒤 작품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시스템이다.

이 교수는 "디자인 작품은 예술작품처럼 한 사람이 영감을 받아서 뚝딱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공학기술과 밀접한 휴대폰이나 자동차 같은 제품의 디자인은 더욱 그렇다. 제품의 기술적인 특성과 어긋나지 않는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험을 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1㎝ 두께의 스마트폰을 디자인한다고 해도 공학기술적으로 1㎝를 구현하는 게 불가능하면 그 디자인은 소용이 없다. 이 교수는 "디자인 프로세스 탬플레이팅이 잘 돼 있으면 어떤 디자인은 하면 안 되고 어떤 디자인은 해도 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논리적으로 설계한 디자인 과정이 '비논리적'인 디자인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홍익대 학생팀은 이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탬플레이팅 과정을 잘한 덕에 콘테스트에서 '오토데스크상'도 받았다.

한국이 자동차 디자인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이런 디자인 프로세스 탬플레이팅이라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탬플레이팅을 많이 연습하면 장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경험을 짧은 시간 내에 얻을 수 있다"며 "물건을 실제로 만드는 게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약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WCU 사업단에서 지금까지 축적한 연구 성과를 이론화하는 작업을 다음달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연구 성과가 논문으로 만들어지면 한국 자동차 디자인업계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