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들도 눈물 지은 한국 양궁 1등 수성의 비결

삼성그룹 사장단이 한국 양궁의 1등 수성에 대한 뒷이야기를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그룹 내부의 부정부패를 지적하고, 1등 제품 몇 개에 자만하지 말라는 쓴소리를 한 것과 관련해 삼성 수뇌부에서도 1등에 대한 남다른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0일 삼성에 따르면 이날 수요사장단회의에는 서거원 양궁협회 전무가 참석해 '한국 양궁의 세계 재패와 수성의 비결'이라는 주제로 열띤 강연을 펼쳤다.

서 전무는 이 자리에서 "한국 양궁은 늘 1등을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잘해야 본전'이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모든 비난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1등이 되기까지는 남들은 알지 못하는 피눈물나는 과정이 있다"고 강조했다.

서 전무는 한국 양궁이 오늘날 세계 최고가 된 데에는 장비(활)의 국산화와 인재 양성이라는 두가지가 뒷받침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1996년 아틀랜타 올림픽 때 한국 남자 양궁은 미국에 1점차로 무릎을 꿇었다. 당시 양궁협회는 패배의 원인을 분석했는데, 중요하게 제기된 것이 남자 대표팀이 쓰던 미국제 '활'이었다.

미국 활 제조업체들은 성능이 개선된 제품을 개발하고서도 이를 경쟁국가에 흘러가지 못하게 막고 자국 선수들만이 쓰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에는 양궁용 활을 만드는 업체가 한 곳도 없었고, 단지 장난감 용 활을 만드는 회사만 3곳이 있었다. 이에 양궁협회는 장난감 활 제조업체와 손잡고 '국산활'을 만들겠다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결정을 내렸다고 서 전무는 회상했다.주변에서는 무시와 비난이 이어졌지만 외국산 활을 사서 분해하고, 재료 및 성분 분석을 하는 등 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1년 반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나마 있던 지원의 손길도 끊기고, 오히려 양궁협회가 장난감 회사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 아니냐는 모함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IMF가 터지자 국산활 제조업체에 오히려 호기로 작용했다. 외국산 활의 수입 가격이 대 당 350만원 수준에서 두 배로 뛰면서 선수들이 국산활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이 국산활을 가지고 나가 금메달을 휩쓸면서 세계 각국에서도 한국산 활이 이름을 떨치게 됐고 이제는 주문이 밀려서 생산을 못할 정도라고.현재 국산활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7%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100%나 다름없는 것이 나머지 33%는 국산활의 비싼 가격 때문에 쓰고 싶어도 구매할 여력이 없는 것는 상황이다.

서 전무는 이날 또 최고의 인재를 찾아 최고의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이 1등을 지키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양궁협회는 매년 1500명의 선수들 중 100명을 추려 1년에 10번의 경기를 치러 국가대표를 선발한다.

1차 체력, 2차 집중력, 3차 정신력, 4차 담력, 5차 승부 근성, 6차 환경에 대한 적응력 등 수 차례의 과정을 거쳐 마지막 국제대회 현장 투입 테스트를 치른 뒤 남녀 각 3명씩의 선수를 뽑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선발된 선수들은 특전사, UDT, 북파공작원 훈련 등에 투입돼 사병들과 똑같은 훈련을 거친다고 서 전무는 설명했다.

일례로 대표팀에 선발된 한 여고1년생은 특전사 훈련을 받던 도중 군복을 벗어던지고 울음을 터트리며 포기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이 때 감독과 코치가 야단을 치는 대신 위로와 격려로 선수를 달랬고, 1시간쯤 지나자 이 선수는 군복을 입고 다시 나와 재도전의 의지를 다졌다.

서 전무는 "이런 과정을 몇 차례 거치면서 선수들이 더욱 단단해지고 다듬어진다"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강의를 듣던 사장들이 갑자기 숙연한 분위기가 됐다"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선수들의 지옥훈련은 이뿐이 아니다. 개개인에게 배낭과 물, 비상식량만을 주고 속리산 문장대에서 태릉 선수촌까지 걸어서 오도록 하는가 하면, 어떤 날은 새벽 2시에 깨워 천호대교에서 63빌딩까지 25km 거리를 경보수준으로 걸어오도록 한다. 시차극복을 위한 훈련인 것이다.

서 전무는 "이쯤되면 선수들은 달관의 경지에 이른다"며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펼쳐졌던 짜릿한 역전승부도 이런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언급했다.

당시 한국 남자 대표팀은 마지막 3발을 남기고 중국에게 2점차로 뒤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첫 번째 선수가 8점을 쏘며 패색이 짙어졌지만 엄청난 집중력과 승부근성으로 두번째, 세 번째 선수가 연달아 10점을 쏘며 역전에 성공했다.

서 전무는 이날 또 자신이 후배들에게 해주는 5가지 조언을 말하며 이것이 기업 경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남 탓 환경 탓을 하지 말고 자신과 무한경쟁하라' '10년 앞을 내다보고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라'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라, 성공의 순간 위기를 느껴야 한다' '리더는 경청해야 한다'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5가지 조언이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은 "수많은 강의 중에서도 오늘처럼 사장들이 몰입하는 강의는 처음이었다"며 "경청을 하고 메모를 하는 등 완전히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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