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택선 교수의 생생 경제] (2) '안전자산' 金의 귀환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3110억달러에 달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200억달러 수준과 비교하면 정말 금석지감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7월 중 외환보유액에서 특이한 점은 금 보유량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물론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도 훨씬 못 미치지만 외환보유에 대한 한은의 입장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외환보유액이라 하면 외국의 유가증권과 예치금,특별인출권(SDR),국제통화기금(IMF)포지션,그리고 금으로 구성돼 있다. 자국 통화가치를 방어하고 대외채무를 상환하는 데 쓰기 위해 중앙은행이 확보하고 있는 외환을 의미한다. 외환보유액은 이처럼 특별한 목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자금이기 때문에 사실 자산으로서의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에 더 중점을 두게 된다. 따라서 주요국 국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지난달 한은이 보유 채권을 일부 팔아 금을 매입한 것이다. 결국 달러표시 채권과 금 사이에 일종의 입장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달러보다는 금을 더 믿는 쪽으로 선회하게 됐다는 신호 같은 것이 아닐까 보인다.

2차대전 이후 브레턴우즈체제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달러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기축통화로 공식적인 역할을 했다. 달러화를 금 가격에 고정시켜 태환을 허용하고,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화에 가치를 고정시키는 방식의 고정환율제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달러화는 곧 금과 마찬가지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달러는 결코 금이 될 수 없었다. 달러는 미국 정부가 찍어내는 돈이었다. 국제시장에서 달러를 필요로 하면 미국은 이를 공급해 주어야 했다. 공급하는 방식은 무역적자를 통해서였다. 세계 경제가 커지면서 미국은 갈수록 더 큰 적자를 감수해야 했고,달러에 대한 신뢰는 무너져 갔다.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였다. 그렇게 브레턴우즈체제는 무너졌고,1973년부터 변동환율의 시대가 시작됐다.

거의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달러화는 여전히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는 그 역할을 대신할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위안화가 그런 역할을 노리고 있다지만 지금으로선 요원하다. 아직은 그래도 달러화만한 게 없다. 비효율적이지만 QWERTY 자판을 쓰는 것처럼 일종의 잠금효과(lock-in effect)인 셈이다.

이 시점에서 금이 주목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마저 하락하고 있는 마당에 외환보유액 가운데 금 보유를 늘린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