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역지사지(易地思之)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지만,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자부심을 느낄 때가 있다면 그건 바로 결혼식 주례를 부탁받을 때인 것 같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숭고한 자리에 주례를 서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참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다. 필자는 60회 이상 결혼식 주례를 서는 보기 드문 행운을 누렸다. 그때마다 강조하는 내용으로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가짐이다. 적어도 20년 이상을 다른 환경에서 살던 두 사람이 화목한 하나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부는 신랑의 입장에서,반대로 신랑은 신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한 것은 가정 내에서만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같은 사무실 내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도 필요하다. 요즘은 하나의 회사가 여러 개 회사와 협력하며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회사 밖에서도 역지사지가 강조되곤 한다. 특히 기업과 협력업체의 관계에서는 명령을 내리고 받는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라,하나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배려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상생이 가능하다. 상생이란 말 그대로 한쪽만 잘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쌍방 혹은 그 이상이 모두 잘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그것은 바로 소통이다. 함께 잘 되고자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우선 상대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의 회사는 주로 전문점 대표나 협력사와 함께 하는 워크숍 또는 간담회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처음 영업사원으로 입사했을 당시에는 제품을 납품한 업체가 판매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회사로 직접 오라고 했다. 그래서 회사에 찾아가 30분 이상을 기다렸는데 결국 경리담당자가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가버려 허탕을 친 적도 있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지금은 회사와 거래하는 모든 협력업체의 통장에 납품 대금을 직접 지급해주고,물품대금 지급방식을 개선해 자금을 원활히 운용하도록 하고 있다. 단순한 일이지만 회사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협력업체 직원들이 방문하는 상담실에도 무선 인터넷을 설치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테이블과 음료 등 사소한 비품에 신경을 써 협력업체 직원들의 부담감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소통의 기회를 갖는다 하더라도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새겨듣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상대방의 의견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자세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나와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래야 폭넓은 의사소통 채널을 확보하고 그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한데 담아,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듣기 좋은 화음과 같은 상생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진형 < 남영비비안 사장 kjh@vivi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