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反)MRO 캠페인에 결국 무너지는 조달 행정

조달청이 IMK 서브원 등 대기업 MRO 업체와 맺었던 납품계약을 기간이 만료되는 대로 해지하기로 했고, 공공기관도 조달청을 통한 MRO 조달이 의무화된다고 한다. 연 매출 200억원인 입찰 참가기준 등을 중소기업을 위해 확 낮춘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조달청의 이런 움직임은 대기업 MRO가 중소기업의 먹을거리를 빼앗는다는 정치권과 청와대의 비판을 정책으로 수용한 것이다.

문제는 대기업 MRO를 싹 몰아내면 국민의 혈세인 예산이 더 절감되고,더 투명하고 공정한 조달이 가능하다는 보장이 있느냐는 것이다. 기업의 원가절감 노력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조건이라면 예산을 더 절감하는 쪽을 택해야 하는 곳이 바로 조달청이다. 아니 국민의 세금을 갖다 쓰는 조달청으로서는 더욱 엄정한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조달청이 대기업 MRO와 납품계약을 맺게 된 것도 결국 그 기준에 가장 부합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2009년 경영혁신대상을 수여할 만큼 비용절감, 적기조달 등의 측면에서 획기적 시스템으로 평가했던 것이 바로 대기업들의 MRO였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그만큼 가격은 더 저렴해진 반면 품질은 좋아졌다. 그런 대기업 MRO 대신 중소기업과 계약을 했을 때 동일한 효과가 나올지 조달청 스스로도 장담을 못하는 눈치다. 당장 조달비용만 10~15% 비싸질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대기업과 MRO 계약을 서둘러 해지했던 공공기관들은 정부의 비용절감 요구와 납품단가가 더 높은 중소기업과 계약해야 하는 상충적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식이면 결국 국민은 업자들을 위해 당연히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중소기업을 위해 조달 기준을 무작정 낮춘다는 것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이 틈만 나면 조달청에 요구해왔던 것이 바로 조달 기준의 완화였다. 곳곳에서 청탁 압력이 많다는 얘기다. 결국 온갖 이권집단들이 날뛰게 될 것이고, 정작 건전한 중소기업들의 기회는 사라진다. 공정성이 아닌 비효율과 부패가 독버섯처럼 창궐할 것이다. 반MRO 캠페인에 도사린 역설이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