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노무현 대통령 부음듣고 구치소 화장실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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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16일 업데이트된 노란가게 릴레이 추모글 '내 마음 속의 대통령 4 : 이광재 前강원지사 편'에서 "꽃이 져도 그 분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애절한 글을 게재한 것.이광재 전 지사가 직접 작성한 이 원고에는 "23살의 한 남자가 42살의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6월 10일 부산, 「백만학도」편집장을 하다가 지명수배를 받아 부산의 주물공장에서 숨어 지내던 저는 6.10 민주항쟁 시위현장에서 쏟아지는 최루탄 속에서 맨주먹 불끈 쥐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 분을 보고 말았습니다.
1988년 4월말,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2층 커피숍에서 23살 어린 나에게 "42살 초선의원 노무현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니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분은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장'이 되셨습니다.1992년, 前국회의원 신분으로 지방 강연을 가셨을 때, 돈을 아끼실 생각에 여관방을 하나만 잡으시고 "난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체질이니 걱정 말고 자소." 하신 후, 제가 목이 말라 일어났을 때 저를 깨우지 않고 혼자 담배를 피시며 저의 코고는 소리를 견디시던 그 분을 발견하고 전 그만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라며 두사람의 인연을 공개했다.
이어 "저의 집을 팔아 그 분의 선거를 치러도, 그 분 때문에 옥살이를 해도 저는 행복했습니다.
1988년 11월 5공비리청문회, 청문회 준비로 일주일동안 잠도 못자도 씻지 못해도, 그 분이 청문회스타가 된다는 생각에 저는 피곤하지 않았습니다.대통령이 되실 때까지 그 분의 정치인 생활 14년 동안 보좌관 봉급이 정식으로 나온 것은 불과 4년 6개월, 돈이 없어도 명예가 없어도 그 분과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저는 행복했습니다.
2002년 10월, 저의 집을 팔아 선거홍보비로 써도 그 분의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저는 행복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6번의 특검 중 2번의 특검을 받아도 로비사건으로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도, 그 죄가 오직 그 분을 대통령으로 만든 죄이었기에 저는 행복했습니다."라고 감정을 풀어냈다.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서는 "'대장'을 지키지 못한 죄인은 통한의 눈물 외에는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라고 애통해 했다."2009년 5월 23일 서울구치소, 그 분의 부음을 듣고 저는 2평짜리 구치소, 그 중에서도 화장실 구석에 머리를 대고 울었습니다. 정치개혁과 동서화합에 정치인생을 걸었음에도 호남, 영남 그 어디에서도 따뜻하게 안기어본 적이 없는 그 분의 삶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최선봉에 섰음에도 진보정치권의 인정을 받지 못한 그 분의 투쟁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국민에게 권력을 내어주고 동북아시대, 비전2030 등 나라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었음에도 국민의 호응을 받지 못한 그 분의 대통령시절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손발이 꽁꽁 묶여 그 분을 지켜드리지 못했음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각오 또한 밝혔다.
이광재 전 지사는 "그 분을 따라 역사의 도구가 되겠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가 그 분의 못 다한 꿈을 찾겠습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습니다. 그 분을 향한 저의 남은 사랑은, 여사님을 어머니로 모시는 것입니다. 여사님께서 그 분을 보고 싶어 하실 때, 막걸리 한 잔 사들고 가서 추억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 분을 향한 저의 남은 사랑은, 그 분을 이어 역사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구시대의 막내'라는 역사의 도구가 되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역사의 절벽에 몸을 던지신 그 분의 못다 한,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광주에서 콩이면 대구에서도 콩인 나라', 동서화합의 대한민국, '남북을 잇는 철도가 중국과 시베리아철도와 연결되고 남북을 잇는 도로가 베링해협을 관통하여 아메리카대륙으로 이어지는 나라', 남북이 상생하고 동시에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한, 역사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라며 굳은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노무현 재단은 지난 5월 6일 노무현 대통령 공식 온라인 쇼핑몰 ‘노란가게’를 오픈했다.
‘노란가게’는 다른 온라인 쇼핑몰과 달리 상품 중심으로 메인페이지를 구성하지 않고, 대통령을 모셨던 참모들 인터뷰를 싣는 ‘내마음 속의 대통령’ 코너를 전면에 배치했다. 단순히 기념품만을 파는데 그치지 않고 노 대통령의 신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곳이 되기 위해서다.
1편으로는 문용욱 盧 전대통령 수행비서의 "모두가 울때, 비서는 울 수 없습니다"가 공개됐고 이어 8월에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30년 동지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둘의 인연을 담은 책 '운명'을 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기도 하는등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이후에도 그 열풍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지난 7월 13일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 칭화대(淸華大) 공공관리대학원 객좌교수로 임용돼 가을학기부터 ‘국가행정의 의사결정 과정’ 강의를 맡으며 1년간 머물 예정이다.
한경닷컴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
16일 업데이트된 노란가게 릴레이 추모글 '내 마음 속의 대통령 4 : 이광재 前강원지사 편'에서 "꽃이 져도 그 분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애절한 글을 게재한 것.이광재 전 지사가 직접 작성한 이 원고에는 "23살의 한 남자가 42살의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6월 10일 부산, 「백만학도」편집장을 하다가 지명수배를 받아 부산의 주물공장에서 숨어 지내던 저는 6.10 민주항쟁 시위현장에서 쏟아지는 최루탄 속에서 맨주먹 불끈 쥐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 분을 보고 말았습니다.
1988년 4월말,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2층 커피숍에서 23살 어린 나에게 "42살 초선의원 노무현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니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분은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장'이 되셨습니다.1992년, 前국회의원 신분으로 지방 강연을 가셨을 때, 돈을 아끼실 생각에 여관방을 하나만 잡으시고 "난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체질이니 걱정 말고 자소." 하신 후, 제가 목이 말라 일어났을 때 저를 깨우지 않고 혼자 담배를 피시며 저의 코고는 소리를 견디시던 그 분을 발견하고 전 그만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라며 두사람의 인연을 공개했다.
이어 "저의 집을 팔아 그 분의 선거를 치러도, 그 분 때문에 옥살이를 해도 저는 행복했습니다.
1988년 11월 5공비리청문회, 청문회 준비로 일주일동안 잠도 못자도 씻지 못해도, 그 분이 청문회스타가 된다는 생각에 저는 피곤하지 않았습니다.대통령이 되실 때까지 그 분의 정치인 생활 14년 동안 보좌관 봉급이 정식으로 나온 것은 불과 4년 6개월, 돈이 없어도 명예가 없어도 그 분과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저는 행복했습니다.
2002년 10월, 저의 집을 팔아 선거홍보비로 써도 그 분의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저는 행복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6번의 특검 중 2번의 특검을 받아도 로비사건으로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도, 그 죄가 오직 그 분을 대통령으로 만든 죄이었기에 저는 행복했습니다."라고 감정을 풀어냈다.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서는 "'대장'을 지키지 못한 죄인은 통한의 눈물 외에는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라고 애통해 했다."2009년 5월 23일 서울구치소, 그 분의 부음을 듣고 저는 2평짜리 구치소, 그 중에서도 화장실 구석에 머리를 대고 울었습니다. 정치개혁과 동서화합에 정치인생을 걸었음에도 호남, 영남 그 어디에서도 따뜻하게 안기어본 적이 없는 그 분의 삶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최선봉에 섰음에도 진보정치권의 인정을 받지 못한 그 분의 투쟁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국민에게 권력을 내어주고 동북아시대, 비전2030 등 나라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었음에도 국민의 호응을 받지 못한 그 분의 대통령시절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손발이 꽁꽁 묶여 그 분을 지켜드리지 못했음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각오 또한 밝혔다.
이광재 전 지사는 "그 분을 따라 역사의 도구가 되겠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가 그 분의 못 다한 꿈을 찾겠습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습니다. 그 분을 향한 저의 남은 사랑은, 여사님을 어머니로 모시는 것입니다. 여사님께서 그 분을 보고 싶어 하실 때, 막걸리 한 잔 사들고 가서 추억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 분을 향한 저의 남은 사랑은, 그 분을 이어 역사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구시대의 막내'라는 역사의 도구가 되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역사의 절벽에 몸을 던지신 그 분의 못다 한,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광주에서 콩이면 대구에서도 콩인 나라', 동서화합의 대한민국, '남북을 잇는 철도가 중국과 시베리아철도와 연결되고 남북을 잇는 도로가 베링해협을 관통하여 아메리카대륙으로 이어지는 나라', 남북이 상생하고 동시에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한, 역사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라며 굳은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노무현 재단은 지난 5월 6일 노무현 대통령 공식 온라인 쇼핑몰 ‘노란가게’를 오픈했다.
‘노란가게’는 다른 온라인 쇼핑몰과 달리 상품 중심으로 메인페이지를 구성하지 않고, 대통령을 모셨던 참모들 인터뷰를 싣는 ‘내마음 속의 대통령’ 코너를 전면에 배치했다. 단순히 기념품만을 파는데 그치지 않고 노 대통령의 신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곳이 되기 위해서다.
1편으로는 문용욱 盧 전대통령 수행비서의 "모두가 울때, 비서는 울 수 없습니다"가 공개됐고 이어 8월에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30년 동지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둘의 인연을 담은 책 '운명'을 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기도 하는등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이후에도 그 열풍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지난 7월 13일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 칭화대(淸華大) 공공관리대학원 객좌교수로 임용돼 가을학기부터 ‘국가행정의 의사결정 과정’ 강의를 맡으며 1년간 머물 예정이다.
한경닷컴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
노전대통령 묘역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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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전대통령 비서
"모두가 울때 나는…"
"모두가 울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