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재정 악화 막고 제약 구조조정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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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약값 평균 20% 인하정부가 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약값 인하'라는 강공책을 내놓은 것은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할 때 약품비 증가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리베이트 등 불법 관행으로 얼룩진 제약업계 구조조정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혁신 제약기업 선정 지원…업계 "재산권 침해" 반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고령화 속도를 고려할 때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며 "관계부처 등과 협의해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보완책을 충분히 세웠다"고 말했다. ◆계단식 약가 폐지
계단식 약가 제도를 도입한 것은 1999년 의약분업을 실시하면서부터다.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은 건강보험에 등록한 순서에 따라 약품 가격을 차등 결정하는 제도가 '계단식 약가' 제도다. 먼저 제품을 개발하거나 새로 들여오는 제약회사를 보호 육성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번에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복제약(제네릭) 가격도 낮아진다. 고경석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관은 "국내 제약회사들이 대부분 복제약인 제네릭을 위주로 영업해왔기 때문에 당시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는 제네릭도 오리지널과 대등하게 경쟁할 만큼 좋아졌기 때문에 약가를 인하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계단형 약가 제도는 이론적인 논리가 없는 만큼 폐지하는 게 당연하다"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강력 반발
정부는 약가 인하 조치와 연계해 앞으로 혁신형 제약기업을 선정,집중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김원종 복지부 보험산업정책국장은 "일정 규모 이상의 신약개발 투자 실적과 글로벌 진출 역량을 갖춘 제약회사 30여곳을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해 약가 우대,법인세 50% 감면,금융 지원 등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국장은 "구조조정이나 해외 진출을 모색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이날 협회 차원에서 복지부를 항의 방문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협회는 약가 인하 관련 고시가 재산권 침해에 관한 사항인데도 법률이 아닌 장관 고시로 이뤄지는 데 대해 헌법소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이번 약가 인하로 제약사마다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매출 감소가 예상되는데 어느 회사가 신약개발 투자에 엄두를 내겠느냐"며 "국가 재정을 감안한 불가피한 조치라 해도 이번 조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도 "신약 프리미엄을 아무리 인정해준다고 해도 이 정도로는 신약을 들여올 메리트 자체가 없어진다"며 "13조원으로 추정되는 약품 시장이 10조원가량으로 뚝 떨어지면 외국계 제약회사도 투자를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기/이준혁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