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음악 그리는 화가' 이순형 씨, 그림 모티브 일상 속에서 찾죠…가끔은 쇼스타코비치도 듣고…

이순형 씨는 일상 곳곳에서 예술의 모티브를 찾는다. 산성으로 향하는 길이나 야외 전시장에서도 그렇다.

'아침 10시쯤 동문에서 북문으로 향하는 성곽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꼬리가 갈색인 새 한 마리가 휙 날아갑니다. 하이소프라노 음에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는데 참나무숲도 그러했나 봅니다. 뚜둑 물기를 떨구네요. 지난밤에 내린 비가 아직 나뭇잎에 머물고 있었나 보지요. 기와 조각 하나를 만지작대며 고갯길을 오르다가 암문(暗門)을 만났습니다. 허리를 굽혀 드나들어 보았지요. '그는 집 부근의 남한산성길에서 만난 암문을 보고 '좁다랗고 어둡지만 육중하여 긴밀한 마음가짐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성곽 밖에서 보면 조그만 구멍 같고 성곽 안에서 보면 두꺼비 한 마리 엎드린 듯하지요. 가슴 한복판으로 이 음악이 흐릅니다. 민족혼을 일으키려 영원의 메시지를 담은 교향시,시밸리우스의 '핀란디아'.'

붓을 씻고 물감 묻은 손을 닦는 오후 3시에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바이올린,첼로를 위한 트리오를 듣는다.

그럴 때 1악장 안단테 모데라토에서는 '사막을 걷고 있는 낙타들의 긴 그림자'를 연상하고,2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에서는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실크의 꿈으로 멈추지 않는 상인들의 걸음',3악장 라르고에선 '신기루 다음에 만나는 오아시스',4악장 알레그레토 아다지오에서는 '사막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들의 느린 몸짓'을 떠올린다. 이처럼 시적인 문장도 그의 또 다른 '달란트'(재능)다. 화분의 현악기 이미지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하이든의 현악 4중주곡을 보여주는 화가. '이순형의 그림에서 나는 늘 머릿속에 누구도 작곡하지 않은 새로운 창작 실내악을 만들어간다'(음악평론가 탁계석)는 찬사도 여기에서 나온다.

그림이나 음악으로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기 쑥스러울 때 그는 글을 쓴다. 《음악 그리는 화가 이순형》 《종이배》 《음악으로 꿈꾸다》 《나의 사랑 나의 음악》 등의 저서가 그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