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길면 장타자가 유리하다? "천만의 말씀"

PGA챔피언십

300야드 지점에 벙커 '지뢰밭'…페어웨이는 딱딱하게 설계
티샷 정확하면 런 길어져…정교한 단타자 상위권 싹쓸이
제93회 PGA챔피언십이 열린 미국 조지아주 존스크리크의 애틀랜타애슬레틱클럽의 하일랜드코스는 파70에 7467야드다. 파70으로는 메이저대회 사상 최장 코스로 조성됐다. 긴 코스인 만큼 장타자가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장타자들은 중하위권으로 밀리거나 커트 탈락한 반면 '무명'의 단타자들이 대거 상위권을 점령했다. 3라운드 '톱10' 진입자 가운데 평균 드라이버샷 300야드를 넘긴 장타자는 키건 브래들리(미국)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코스 설계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쳐본다.

◆장타자 발목을 잡은 벙커

2006년 코스를 리모델링한 리스 존스는 코스를 길게 하면서 장타자들에게 불리하도록 티샷 낙하 지점에 벙커를 만들었다. 장타자들의 티샷 거리인 300~320야드 지점에 벙커를 새롭게 배치한 것이다. 타이거 우즈가 첫날 14개의 벙커에 빠지며 발목을 잡힌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프로들에게 벙커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어프로치샷 공략이 여의치 않을 때 일부러 그린사이드 벙커에 볼을 떨어뜨려 그린을 공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코스의 벙커는 좀 달랐다. 벙커의 모래가 파우더처럼 매우 부드러워 볼이 모래 위에 서 있지 않았다. 약간씩 모래에 잠겨 있거나 '에그 프라이' 형태로 박혀버렸다. 볼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면 엄청난 거리 손실이 불가피했다.

◆정확한 단타자에게 유리

상위권에 오른 선수를 보면 단타자에게 유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라운드 선두인 스티브 스트리커는 평균 드라이버샷 거리가 287.9야드로 116위다. 2위 제리 켈리의 드라이버샷 거리는 187위(275.2야드)지만 페어웨이 적중률은 7위(71.68%)다. 3위에 오른 숀 미킬의 장타 랭킹은 130위(286.1야드),4위 스콧 버플랭크는 180위(277.1야드)였다. 3라운드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공동 선두인 브렌든 스틸은 장타 랭킹 94위(290.6야드),제이슨 더프너는 137위(285야드)다. 평소 거리가 짧지만 정확한 티샷을 자랑하는 이들은 딱딱한 페어웨이에서 발생한 런(run)의 덕을 봤다.

반면 멀리 치지만 정확도가 떨어지는 장타자들은 코스 개조의 희생양이 됐다. 장타 랭킹 4위 더스틴 존슨(311.1야드),13위 존 데일리(303.1야드),19위 제이슨 데이(300.7야드)는 커트 탈락했다. 유러피언투어 장타 랭킹 1위 알바로 키로스(310.8야드)도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장타자로 분류되는 우즈도 개인 통산 4번째 메이저대회 커트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장타자들의 볼은 조금만 잘못 맞아도 빠르게 굴러 러프로 들어갔다. ◆전략적인 어프로치샷이 승부 갈라

정교한 티샷과 함께 전략적인 어프로치샷이 승부를 갈랐다. 이번 대회의 핀 위치는 대부분 그린 앞부분에 꽂혔다. 이런 상황에서는 탄도가 높은 샷을 구사해 백스핀을 먹여 바로 볼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골퍼들에게 유리하다. 로리 매킬로이,리키 파울러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적합하다. 그러나 이 코스에서는 달랐다.

설계가인 존스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린이 매우 딱딱하고 빠르기 때문에 스핀이 덜 먹는 샷으로 굴려서 홀에 접근하는 어프로치샷을 구사해야 하는데 젊은 선수들은 이런 샷에 익숙하지 않다"며 "베테랑들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PGA챔피언십 우승자는 장타보다 정확한 드라이버샷을 하면서 낮은 탄도의 샷으로 전략적인 어프로치샷을 구사하는 선수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