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 코스' 재판연구관, 얼마나 바쁘길래…휴가? 1년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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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1년 365일 중에 하루도 휴가를 못 빼냐."

지난 12일 대법원 중앙 엘리베이터 안.한 판사의 푸념에 모두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신건(新件)조가 바쁘긴 바쁜가 보네." 옆에 선 동료 판사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역시 썩 유쾌한 처지는 못된다. 16일 하루가 올여름 휴가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모두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이지만 휴가 쓸 엄두를 못 내는 대표적인 직군이 이들이다. 특히 17명인 신건조가 심하다. 이들이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대법원 전체에 과부하가 걸린다. 하루에도 수백건씩 올라오는 상고심 사건들을 '쉬운 사건'과 '어려운 사건'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이들의 별명은 '문지기'다.

대법원 소속 판사인 재판연구관에는 이들 외에도 '전속조'와 '공동조'가 있다. 전속조는 1명의 대법관 밑에서 일하는 반면 공동조는 형사 민사 지식재산 조세 등 주제별로 나뉘어 14명 대법관들의 업무를 보좌한다. 대법관과 재판연구관은 판결문 작성 등으로 매일 얼굴을 맞대지만 상호간의 '체감거리'는 꽤 멀다.

무엇보다 경륜의 차이가 크다. 재판연구관은 판사 14년차들에게 주어지는 보직.2년간 근무하면 부장판사를 달고 지방법원으로 배치된다. 반면 대법관들은 경력이 이들의 2배가량 된다. 사건처리 건수도 재판연구관들은 1주일에 평균 2건 정도인 데 비해 대법관들은 70건이 넘는다. 한 재판연구관은 "대법관과 식사를 같이 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횟수가 잦은 연구관도 한 달에 한두 번 점심을 나누는 정도다. 대법관들은 별도의 전용 식당에서 대법관들끼리 식사한다. 식사 시간만큼은 대법관과 재판연구관이 '따로국밥'인 셈이다.

대신 3인 1조의 재판연구관들끼리는 매끼 식사를 함께한다. K재판연구관은 "10~15분밖에 안 걸리지만 밥 먹는 자리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각자 맡고 있는 사건보따리를 풀어놓으며 모르는 부분은 묻고 알고 있는 부분은 조언해주죠.저는 누구라도 자신있게 얘기하면 그걸 해답으로 채택할 때가 많습니다. 밥 먹으면서 사건 하나 해결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재판연구관들 중 특히 전속조는 담당 대법관과 호흡을 같이해야 하기 때문에 휴가는 물론 주말도 없이 일에 매달려야 한다. 그럼에도 동기 판사 가운데 임명 비율이 20~30%에 불과하기 때문에 선호하는 자리이고,자부심도 강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을 많이 다룰 수 있고,같은 선배 판사들의 연구 자료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