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의 승리…브래들리, 막판 트리플보기 하고도 역전 우승

PGA챔피언십

17번홀 14m 버디로 공동 선두…메이저대회 첫 출전해 우승
美, 메이저 7번째 만에 '자존심'…최경주 39위·노승열 45위
메이저대회에서 1~2타 차이로 우승경쟁을 벌이던 선수가 막판 4개 홀을 남겨두고 트리플보기를 한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만회는 고사하고 10위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제93회 PGA챔피언십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15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존스크리크의 애틀랜타애슬레틱클럽(파70) 15번홀.파3홀이지만 260야드로 길게 조성돼 대회 기간 내내 선수들의 발목을 잡은 홀이다. 제이슨 더프너(34 · 미국)를 2타차로 추격하던 키건 브래들리(25 · 미국)의 티샷은 그린 왼쪽 러프에 멈췄다. 브래들리는 반대쪽에 있는 홀을 향해 칩샷을 했다. 내리막 경사를 타고 구르던 볼은 홀을 지나 해저드로 뛰어들고 말았다. 1벌타를 받고 109야드 지점의 드롭존에서 친 네 번째 샷은 홀 1.5m 지점에 멈췄다. 크게 낙담한 브래들리는 더블보기 퍼팅마저 실패하며 순식간에 3타를 잃고 말았다.

그 순간 바로 뒷조에서 플레이하던 더프너는 티잉그라운드에서 그 장면을 지켜봤다. 어깨가 축 처진 브래들리가 그린을 벗어나고 난 뒤 더프너가 3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했다. 그러나 148개 대회를 출전하고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더프너의 티샷은 우측으로 휘더니 물에 빠졌다. 역시 드롭존에서 세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린 그는 2m 훅라인 퍼팅을 집어넣어 보기로 막았다. 누가봐도 우승을 확정짓는 퍼팅으로 여겼다. 더프너는 19개홀 만에 첫 보기를 했지만 12개홀 연속 1퍼트로 마무리하는 고감도의 퍼팅 실력을 선보였다.

브래들리는 16번홀에서 2m 버디를 잡아내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내는 듯했으나 누구도 역전 우승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더프너가 16번홀에서 벙커에 빠져 보기를 할 때까지도 그랬다. 둘의 간격은 2타차.이변은 17번홀(파3 · 160야드)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버디가 불가능해 보이던 거리에서 브래들리는 14m짜리 롱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갤러리들은 환호했고 브래들리는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다. 더프너는 두 홀 만에 반전된 상황을 역시 뒤에서 지켜봤다.

더프너의 17번홀 티샷은 10m 정도 떨어졌다. 더프너는 경기 후 "이 티샷을 하고 난 뒤 캐디도 모르게 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공개했다. 하지만 '온그린'에 너무 방심한 더프너의 버디 퍼팅은 홀을 3m나 훌쩍 지나쳐버렸고 어려운 슬라이스라인 파 퍼트를 놓쳤다. 3개홀 연속 보기를 하며 공동선두를 허용하는 순간이었다.

더프너의 갑작스런 퍼팅 난조는 '3개홀 연장전'까지 이어졌다. 16번홀에서 치른 연장 첫 번째 홀에서 1.2m 버디 퍼트를 놓치며 1m 버디를 낚은 브래들리에게 처음으로 뒤졌고 끝내 전세를 뒤집지 못했다. 브래들리는 첫 메이저대회 출전에서 PGA챔피언십 우승컵 '워너메이커(wanamaker) 트로피'를 차지했다. 우승상금은 144만5000달러(15억6000만원).

미국은 지난해 마스터스의 필 미켈슨 우승 이후 7번째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컵을 차지했다. 최경주(41)는 합계 4오버파 284타로 공동 39위,노승열(20)은 합계 5오버파 공동 45위를 기록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