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4大 주력업종'…경기악화에 글로벌 견제 '엎친데 덮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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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강자에 포위되는 한국기업
해외 기업들의 잇단 대형 인수·합병(M&A)과 견제로 한국의 주력 업종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되는 추세다.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철강 등에선 아직까지 세계 1위 자리를 지켜내고 있지만 업종별로 보면 위기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자동차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일본의 반격이 매섭다. 글로벌 기업 간 몸집 불리기는 국내 주력 업종에 더 큰 위기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치킨게임 격화로 수익성 악화…日 거센 반격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세계 메모리시장에서 1,2위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에서 대만 일본 업체들을 큰 폭으로 앞선다. 2분기 D램 점유율만 보면 삼성전자가 41.4%를 차지하고 있으며 하이닉스가 22.8%로 2위에 올라 있다.
수익성은 악화되는 모습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값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서다. D램 값은 지난 5월 1달러를 회복했다가 6월 이후 다시 1달러 밑으로 추락했다. 7월과 8월 들어선 급락세다. 이달 상반기 D램 값은 0.61달러로 생산원가(1달러 초반)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수익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이닉스의 경우 3분기 주요 제품 가격 급락 여파로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이 같은 가격 급락 속에서도 투자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치킨게임 상황을 다시 한번 만들어 해외 경쟁사들을 압도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2007년 이후 계속된 치킨게임에서 독일 키몬다를 제외하고는 '패자'가 없다는 데 있다. 대만 업체들은 여전히 원가 절감을 통해 버티고 있고 한발 더 나아가 일본 업체와의 합종연횡을 모색 중이다. 일본 업체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엘피다가 대표적으로 올 상반기에만 701억엔(9793억원)의 자금을 확보,라인 증설 경쟁에 돌입했다. 7월 말에는 25나노 D램을 맨 먼저 시험생산해 기술 경쟁에도 맞불을 놓았다.
더군다나 애플 등 해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삼성전자 하이닉스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일본 대만 기업으로 거래처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는 분위기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애플이 삼성전자에서 공급받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대만 TSMC로 넘겨주려는 게 지금 반도체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中·日 철강사 덤핑 공세…재고 늘어 감산 검토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은 일본과 중국에서 밀려들어오는 저가 철강재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일본제철 JFE스틸 스미토모금속공업 등 일본 철강업체들은 대지진 직전인 지난 3월 초 t당 950달러였던 열연강판 수출 단가를 지난달 말부터 720~730달러로 낮췄다. t당 990~1010달러인 일본 내수가격보다 최대 30%가량 싸다. 후판 값도 3월 초 t당 1050달러에서 830~840달러대로 인하했다. 포스코 현대제철의 2분기 기준가격과 비교하면 약 20% 낮은 것으로 중국산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 업체들은 내수시장 침체에 따른 재고 정리를 위해 물류비가 저렴한 한국에 덤핑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올해 일본에선 열연강판은 2600만t,후판은 400만t 이상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포스코와 현대제철,동국제강 등 국내 업체들이 생산하는 철강재 유통가격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국내 열연강판과 후판 시장의 20%가량을 차지하는 일본산 철강재의 덤핑 공세로 국내 업체들은 재고가 쌓이면서 일시적 감산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철강업체들의 저가 및 편법 수출도 국내 시장을 흔들고 있다. 작년 7월 중국 당국이 보통강에 대한 수출 증치세(부가가치세) 환급을 폐지한 이후 중국 업체들이 보통강에 합금용 첨가제인 보론(붕소)을 넣은 철강제품을 합금강으로 위장해 국내에 수출하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이 일본과 중국의 저가 공세로 가격이 왜곡되는 등 큰 혼란을 겪고 있어 향후 국내 업체들의 투자나 사업계획 전반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애플·구글 OS경쟁…삼성·LG 주도권 '흔들'
휴대폰 부문은 한국 기업의 경쟁력 저하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고 있는 분야다. 기존 일반폰 시절 강자로 군림했던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점차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제품의 핵심 경쟁력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휴대폰 시장에서는 이동통신사가 주도권을 쥐고 각 제조업체에서 단말기를 공급받았다. 제조업체들은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이를 기반으로 이동통신사와 잘 교섭하면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대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변했다. 애플은 자사의 뛰어난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로 제품 출시 및 판매 과정에서 통신사보다 우위에 서 있다. PC 분야에서 축적된 소프트웨어 파워가 애플의 경쟁력이다.
전문가들은 다른 한 편에 서 있는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도 국내 업체엔 '독이 발린 사과'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공짜로 쓸 수 있는 OS이긴 하지만 구글의 검색 엔진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탑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수익을 거둘 수 있는 콘텐츠 분야에서 구글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자체 OS '바다'를 개발하는 한편 클라우드 기반의 콘텐츠 비즈니스를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에선 경험이 일천한 데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지난달 출시한 '옵티머스3D'가 최신 OS를 탑재하지 못하는 등 소프트웨어 경쟁력에서 혹평을 받고 있다. 급속히 바뀌는 산업 구도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형국인 셈이다.
판매·생산 급속 회복한 일본車와 정면승부
주력 업종 가운데 자동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현대차와 기아차 등이 해외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업계는 앞으로 일본 리스크라는 큰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대규모 리콜과 대지진으로 일본 자동차 생산라인이 급격히 무너졌지만 최근 들어 빠르게 원상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대·기아차는 일본이라는 경쟁 상대가 빠져 글로벌 시장에서 적잖은 반사이익을 얻었다면,이제는 일본이라는 제대로 된 경쟁자와 진검 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일본 업체들은 실지 회복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올 2월 28만대를 생산했던 도요타는 대지진으로 3월엔 13만대가량밖에 생산하지 못했고 4월 생산량은 5만대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5월에 10만대를 넘어선 데 이어 6월에는 25만대 가까이 생산량을 늘렸다. 이미 대지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다. 닛산도 지진으로 인해 월평균 생산량이 9만대에서 5만대 이하로 떨어졌지만 6월에 지진 이전 수준인 10만대를 회복했다.
생산뿐 아니라 판매망도 개선되고 있다. 도요타의 미국 내 판매량은 5월에 10만대 선으로 떨어졌지만 6월 12만대,7월 13만대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닛산 역시 7만대 선이던 미국 판매량이 3개월 만에 8만4000대로 증가했다. 채희근 현대증권 산업재팀장은 "9월이면 일본 업체들이 대지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10월부터 도요타의 신형 캠리 등 일본 신차가 쏟아지면 한국 업체들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세계적으로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점도 국내 자동차 업계에 큰 부담이다.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인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372명의 자동차 딜러 중 72%가 '소비심리가 악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태명/정인설/장창민/조귀동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