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달러조달 비용 50bp 상승…절반은 '김석동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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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동의 금융 Watch지난 16일 A은행 자금부에 노무라증권 사람이 찾아왔다. 용건은 "달러를 쓰지 않겠느냐"는 것.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한 이후 정부가 은행에 외화자금 확보를 지시하자 달러를 빌려주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글로벌 시장 달러 넘쳐…리먼사태 때와 상황 달라
정부 "외화 대거 확보" 지시
노무라증권은 '커미티드 라인(committed line)' 개설을 제안했다. 커미티드 라인은 비상시 자금을 우선적으로 빌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A은행 자금부 관계자들이 "수수료가 얼마냐"고 묻자 "60~70bp(1bp=0.01%포인트)"라는 답이 돌아왔다. 1억달러 규모 커미티드 라인을 설정하려면 60만~70만달러를 내라는 것이었다. A은행은 달러가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수수료까지 내면서 외화자금 확보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2008년 상황과 달라
2008년 9월15일 미국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직전 한국 정부가 발행한 5년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의 가산금리는 미국 국채 대비 190bp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지고 글로벌 자금시장이 급속히 경색되자 10월 말엔 542bp까지 뛰었다.
외화자금 시장 상황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표인 외평채 신용부도스와프(CDS) 스프레드(가산금리)도 그해 8월 말 116bp에서 10월 말 375bp로 치솟았다. 달러 조달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당시엔 글로벌 금융시장이 얼어붙어 높은 금리를 준다 하더라도 달러를 조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지금은 그때와 천양지차다. 우선 외평채 가산금리나 CDS 스프레드 자체가 현격히 낮다. 외평채 가산금리는 현재 170bp 수준이다. 지난 11일 173bp까지 올랐다가 글로벌시장이 안정되면서 다시 낮아지는 추세다. 글로벌시장에는 달러가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이 두 차례 양적완화를 통해 2조3000억달러를 공급한 데다 사실상 제로금리를 유지해 미국 시중은행들이 달러를 아시아 등 신흥국으로 계속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달러 캐리'자금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진단이다. ◆"정부가 과잉대응하고 있다"
외평채 가산금리가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것과 달리 국내 시중은행들의 차입 여건이 꽤 나빠졌다고 은행 관계자들은 전했다. 3년만기 달러표시 채권의 가산금리는 지난달 말 220~240bp 수준에서 최근 260~280bp 수준으로 뛰었다. 40~80bp가량 치솟았다. 외평채 가산금리 상승폭(20bp)보다 20~60bp 더 올랐다.
시중은행 조달비용이 더 오른 것에 대해 은행 관계자들은 "정부의 과잉대응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은행 부행장은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외화를 대거 확보하라'고 지시하면서 조달 코스트가 뛰고 있다"며 "조달 코스트 상승폭의 절반은 시장의 일시적 충격 때문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정부의 과민반응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략 25bp 정도가 '김석동 스프레드'라는 얘기다.
다른 은행 부행장도 "국내 은행들이 하나같이 커미티드 라인 설정에 목을 매니 수수료가 치솟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은행 압박의 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은행들은 정부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트라우마(아픈 기억)'때문에 달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금융위가 과도하게 공포분위기로 몰고 가는 것은 외국투자자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거나 돈벌이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요즘 한은이 외화스와프시장 등에서 조용히 외국자본의 투기 차단에 주력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금융위는 '전시 행정'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한다.
박준동 금융팀장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