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택선 교수의 생생 경제] (3) 제로금리의 함정

국가신용등급 하락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앞으로 2년간'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이례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금융시장이 격랑의 조짐을 보이자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셈이다. 그런데 제로금리를 2년간 유지하겠다고 한 것은 경제정책의 핵심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를 당분간 포기하겠다는 의미여서 그 파장이 향후 어떤 형태로 경제에 나타날지는 걱정스러운 측면이 있다.

금리는 금융정책의 핵심이다. 경기가 과열되면 금리를 인상해 통화량을 줄이는 쪽으로 금융긴축을 실시하고,경기가 나빠지면 금리를 인하해 통화량을 늘리고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도록 유도한다. 중앙은행이 금리 하락을 유도하는 방법은 단기국채를 사들임으로써 채권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미국은 연방기금 금리를 기준금리로 하고 있는데,이것을 2008년 12월 0~0.25%로 낮춘 이래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것을 2년간 다시 손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공개시장조작과 같은 방법으로 단기금리를 더 낮출 수 없게 되고,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질 경우에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의 양적완화(quantative easing)를 통해 본원통화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미 두차례나 양적완화를 실시했으나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상황이다. 따라서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을 안고 또다시 세 번째 양적완화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제로금리 정책은 일본에서 이미 1990년대 말에 시행한 바 있다. 일본은행은 1999년 콜금리를 낮춤으로써 단기금리를 0%에 가깝게 만들었다. 제로금리가 되면 물가를 감안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가 된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어 소비를 늘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마이너스 실질금리에도 저축을 늘리는 기현상을 연출했다. 다급해진 일본은행은 2001년부터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통화 공급을 늘렸지만 그와 같은 정책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얻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양적완화'라는 용어가 당시 일본은행이 처음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

일단 최근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는 듯해 다행스럽긴 하지만,물가가 최대 경제현안인 우리로서도 미국의 제로금리가 반갑지만은 않다. 외국 자본이 우리 국채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국내 금리도 하락할 것이고,금리를 통해 물가를 잡으려던 정부 정책의 운신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 경제학 교수 tsroh@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