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의 나라' 칠레에선 '악어의 인내'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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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가는 窓한국이 2003년 2월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칠레는 'FTA의 나라'로 불린다.
al tiro(총알같이)와 paciencia(인내)
의사 결정할 땐 인내심 갖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일단 확신이 서면 총알같이 빠르게 행동
이민국가·가족 비즈니스
독일계 이민자 가장 많고 파울만·마테·룩시치 등 몇몇 가족이 재계 좌지우지
개방형 강소(强小) 국가를 지향하는 칠레는 현재 51개국과 FTA를 체결했고,한 단계 높은 차원의 지역협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와 남미의 태평양축을 아우르는 경제심화협정에 서명했으며,미국 등 10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협상 중이다. 칠레는 현지 시장의 특성과 기업인의 속성을 잘 파악한다면 중남미 국가에서 가장 진출하기 쉬운 국가로 꼽힌다. 우선 최근 칠레 산업과 유통 부문의 독과점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칠레의 평균 수입관세가 1.2%에 불과하고 통관도 48시간 이내에 할 수 있어 관세 · 비관세 장벽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뜻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칠레 20대 주요 기업의 매출액이 국내총생산(GDP)의 50%에 달하는 등 산업별 독과점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칠레는 남미 주요국가 중에서 인구나 면적이 가장 작다. 이 때문에 브라질 등과 제조업 분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펄프,수산업 등 경쟁우위 분야만을 골라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펼친 결과다. 특정 분야에서 1,2위 기업이 60~70%를 장악하고 있다. "최소 5위 안에 들어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유통부문도 중남미 1,2위를 다투는 센코수드,팔라베야 등 3개 사 정도가 장악하고 있다. 최근 칠레 유통자본은 페루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에도 진출, 현지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칠레가 이민국가란 점과 재계가 몇몇 주요 가족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칠레는 독일계가 가장 많은 다문화 이민사회로 스페인계 마테(Matte)와 에라수리스(Errazuriz),독일계 파울만(Paulmann),이탈리아계 앙헬리니(Angelini),크로아티아계 룩시치(Luksic) 등 가족이 재계를 주무른다. 칠레 내 업종별 주요 기업을 보면 주요 가족의 지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출신국별 비즈니스 관행에 대한 이해와 네트워킹이 필요하다.
칠레 기업인의 의사결정 과정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 티로(al tiro)'와 '파시엔시아(paciencia)'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알 티로'는 '총알같이'라는 뜻의 칠레식 스페인어로 한국어의 '빨리빨리'에 해당하는 표현이고,'파시엔시아'는 '인내'라는 뜻이다.
칠레 기업인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답답할 정도로 인내심을 갖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확신이 서면 총알같이 빠르게 행동에 옮긴다. 칠레인의 소위 '악어의 인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두르거나 독촉하면 협상력도 뒤지고 비즈니즈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칠레 시장 특성과 기업인을 잘 이해한 한국 기업들의 성공사례는 해가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칠레에서 판매되고 있는 신차 10대 중 4대가 현대 · 기아자동차 등 한국산이고 삼성과 LG 등도 전자제품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성공사례도 늘고 있다. 화성써모는 칠레 차량용 냉동기시장의 60%를 장악했고,파세코는 난로시장에서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전춘우 < KOTRA 산티아고 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