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철 칼럼] 대공황에서 배우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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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에 드리운 '1937년의 악몽'…'위기=기회' 역발상 필요할 때1929년 10월29일 뉴욕 증시의 기록적인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4~5년의 고통스러운 기간을 거치면서 끝이 보이는 듯했다. '세계 대공황'(진 스마일리 著)은 1937년 들어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분위기가 퍼지면서 장밋빛이 감돌던 모습을 잘 묘사한다.
하지만 상황은 급반전된다. 2차 경기침체가 몰아친 것이다. 미국 경제의 심장은 또다시 멈췄다. 1937년 5월부터 1년간 내구재 생산은 무려 67% 줄었다. 주식시장 붕괴는 생산 감소만큼이나 혹독했다. 1937년 8월부터 12월까지 주가는 41.5% 하락했다. 1938년 4월 바닥을 칠 때까지 추가로 10% 더 떨어졌다. 대공황의 지옥문으로 들어선 1929년 9월부터 1930년 5월 사이에 약 25%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2배에 이르는 폭락이었다. 첫 지진보다 충격이 더 큰 여진이었다. 뉴욕 증시가 붕괴되면서 미국 경제가 1937~1938년의 악몽을 되풀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힘겹게 극복했지만 더블딥에 빠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다우지수가 하루에 400포인트 이상 널뛰기를 하는 건 다반사다. 한국 증시의 개미 투자자들이 투매 대열에 동참했던 것도 그 같은 공포감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1937년처럼 또 다른 불황이 재연될까. 당시 미국이 엄청난 경기 하강을 다시 겪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첫째 미국 중앙은행(FRB)이 너무 빨리 통화긴축으로 돌아섰다. 대공황의 첫 충격이 진정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자 FRB는 지급준비율 인상으로 통화량을 줄였다. 둘째 정부는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올리기 시작했다. 1935년 중반께부터 상속세와 증여세를 올리고 고소득층의 소득세 누진세율을 높였다. 이른바 '부자 쥐어짜기' 세법이었다. 셋째 사회보장세 도입과 노조결성 등으로 노동비용이 급증했다.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미국에 긴축정책을 펴지 말 것을 주문하는 것도 어찌 보면 1937~1938년의 악몽 때문인지 모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미 프린스턴고등연구소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재정지출을 줄일 때가 아니라 오히려 대폭 늘릴 때"라고 강조했다. 빚더미에 눌려 신음하는 미국 경제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책상물림의 비현실적 제안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경제체력이 고갈됐을 땐 긴축 처방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슷한 주장을 폈다.
다행스런 점은 대공황 이론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벤 버냉키가 FRB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13년 중반까지 제로 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중앙은행이 향후 2년간의 통화정책을 명확하게 예고한 것은 전무하다. 조기 긴축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제2의 위기를 막는 최후의 보루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FRB만 달라진다고 미국 경제가 1937년과 같은 최악의 경기침체를 피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당시의 경제환경은 지금과 많이 다르다. 미국의 재정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국가부도 위기를 가까스로 피했다. 유럽이라는 또 다른 환자는 오늘도 숨이 깔딱거린다. 온통 우울한 뉴스들뿐이다.
굳이 안도의 실마리를 찾자면 대공황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든 1937년의 고통도 1년을 넘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듬해 6월을 기점으로 미국 경제는 다시 회복세로 돌아섰고 2차대전을 거치면서 대공황의 길고 긴 터널은 끝이 났다. 공포의 절정기였던 1937년 최저치에서 주식을 산 용기 있는 투자자들은 1년도 안 돼 60%의 차익을 챙겼다.
더블딥 공포에 떠는 투자자들이 한번쯤 새겨봐야 할 금융위기의 역사다. 역사는 반복된다. 고광철 논설위원 / 경제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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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방 하나 잡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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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냐 전화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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