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t1t2 판단법'

1976년 대학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원 없이 빈둥거렸다. '놀았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논다는 것은 재미있게 즐기는 것인데,딱히 기억나는 추억도 없이 세월만 보냈다. 미팅을 나갔지만 키 작고 말주변도 없어서 별 인기가 없었다. 술과 담배도 입에 대봤지만 몸에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냥 친구들 따라 다니다가 1년이 흘렀다.

그러다가 1학년 말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졸업 후에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법조인이 될 수 없었다. 당시는 요즘처럼 1000명을 뽑는 때가 아니라,수만명이 도전해 고작 수십명이 합격하던 시절이었다. 재학 중 합격자는 거의 없었고 10년 넘게 공부해도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합격 확률이 높아질 거란 믿음 하나로 사법시험에 뛰어들었다. 이때 끝까지 마음에 걸린 일은 당시의 시대 상황이었다. 주변의 친구들을 비롯해 많은 대학생이 민주화운동을 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일은 이런 시대 상황을 외면하고 자신의 앞날만을 위한 약삭빠른 행동이 아닐까 깊이 고민했다.

그러다가 시험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내 나름대로의 't1t2 판단법' 덕분이었다. 그 판단법의 핵심은 이렇다. 만일 지금(시점 t1) A와 B,두 가지 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고 하자.A는 절대적으로 중요해 보이는 일이고 B는 덜 가치 있어 보인다. 얼른 생각하면 지금 A를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만약 A는 나중(시점 t2)에도 할 수 있지만 B는 그때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하자.지금 A를 하면 나중에 B는 할 수 없고,지금 B를 선택하면 나중에 A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두 가지 다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나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B를 선택하는 것이다.

당시 나에게 A는 민주화운동이었고 B는 사법시험 준비였다. 먼저 학생운동에 뛰어들면 사법시험은 물 건너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민주화에 기여한다면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먼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판단법으로 나는 나중에 행정고시와 외무고시에 도전했고 미국 하버드,예일,컬럼비아 로스쿨 유학,방송 출연,주식 연구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도 이 판단법이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복지가 화두인 것 같다. 하지만 복지를 선택함으로 인해 미래의 무엇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아이들의 미래를 더 풍성하게 하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현재 우리의 선택은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고승덕 < 국회의원 audfbs@unite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