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애플의 시대'와 대한민국

'디자인 기업 시대' 개막…'제2, 제3의 애플'이 두렵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은 캘리포니아다. "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가 한 말이다. 그는 자본주의 권력의 거점은 서쪽으로 이동을 거듭해왔다고 했다. 이 거점은 1900년대 초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을 떠나 미국에 상륙,제조업을 꽃피운 보스턴과 금융업의 메카인 뉴욕을 차례로 거쳤다. 1980년대 태평양 해안가인 캘리포니아로 건너왔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캘리포니아는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정보기술(IT)산업의 집합지이자,영상콘텐츠 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도 품에 안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애플이 지난 10일 뉴욕시장에서 엑슨모빌을 누르고 시가총액 1위 자리에 오른 것은 아탈리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엑슨모빌은 석유산업의 중심지이자 '옛 거점'을 아우르는 동남부 해안 인근(텍사스 어빙)에 자리잡고 있다. 명문 록펠러가를 상징하면서 120년간 미국 기업의 대표로 군림해왔던 엑슨모빌이,대학 중퇴자인 스티브 잡스의 지휘 아래 벤처기업처럼 움직인 애플에 정상의 자리를 넘겨준 것이다. 이 '사건'은 세계 기업사에 또 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우선 애플이라는 기업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애플은 공장 하나 갖고 있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애플을 '엔지니어들이 함께 일하는 디자인 기업'이라고 규정했다. 제품과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는 게 본업(本業)이란 얘기다. 디자인 기업이 하드웨어 산업의 대표주자인 제너럴모터스(GM)와 제너럴일렉트릭(GE),엑슨모빌을 차례로 누른 것이다.

애플이 급성장한 속도와 시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애플의 시가총액과 이익은 2008년부터 3년간 각각 2배,4배씩 불어났다. 월가에서는 "1975년 설립된 애플이 마치 신생기업처럼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플이 급성장한 시기는 전 세계가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던 때였다. 뉴욕의 금융권력을 상징했던 골드만삭스는 각종 소송과 규제에 시달리면서 제몸 하나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애플이 시가총액 1위에 오르던 2011년 8월10일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신용등급 하락 여파로 주가가 급락하고,시장은 공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러나 그 순간 실리콘밸리로 가는 길은 차량행렬로 심각한 교통체증을 겪었다는 게 현지 언론의 보도였다. 수십억원짜리 집도 매물이 없어 못 살 정도다. 전형적인 호황기 징후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애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MS) 전성기 때 빌 게이츠는 가장 두려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창고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있을 젊은이들이다. " 그 순간,스탠퍼드대 인근에서 구글의 창업자들은 여자친구의 차고를 빌려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게이츠의 예견대로 그들은 모바일시대 MS를 넘어서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했다. 지금 캘리포니아에는 제2,제3의 애플과 구글을 꿈꾸는 수많은 젊은 기업가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아탈리는 거점도시의 조건으로 인간의 욕망을 빠른 시일 내에 사업화할 수 있어야 하며,전 세계 인재들이 모여 자유롭게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꼽았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벤처캐피털)도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 도쿄와 파리 등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거점이 될 기회를 놓쳤다. 한국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김용준 국제부 차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