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성비(性比)

1954년 작 뮤지컬 영화 '7인의 신부'를 보면 이른바 약탈혼이 등장한다. 산골에 사는 7형제 중 장남이 결혼한 뒤 동생들의 짝을 찾아주러 마을에 내려갔는데,동생들이 각자 신부를 납치해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여자가 귀하던 서부 개척시절에 있었을 법한 에피소드다.

성비(性比 · sex ratio)는 역사적으로 혼인풍습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원시시대엔 족내혼과 난혼이 보편적이었으나 기근 질병 전쟁 등으로 성비가 깨지면서 부족 간 다툼과 약탈혼이 만연하게 된다. 고대 로마의 청년들은 이웃 사비니족의 여인들을 강탈했다. 서양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세우는 것은 신부를 되찾으려는 적들을 헷갈리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고구려 건국신화나 조선시대 보쌈 풍습에서도 약탈혼의 흔적이 엿보인다. 약탈혼이 평화적으로 진화하고,족내혼의 우생학적 폐해를 인식해 인류가 발전시킨 것이 오늘날 족외혼이다. 성비는 여성 100명당 남성 비율로 표시된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1차 성비(출생 성비)는 100을 웃돌고,50세 이상 2차 성비(남녀 성비)는 여성이 장수하므로 100을 밑돌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99.5) 처음으로 전체 남녀 성비가 100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남성중심 사회인 중동국가들의 성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5년 통계를 보면 카타르는 성비가 187.8에 달했고 쿠웨이트 152.2,아랍에미리트 144.2 등이다.

자연상태의 출생 성비는 여야 100명당 남아 103~106명이라고 한다. 이 비율을 넘어가면 태아 성감별,낙태,영아 살해 등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중국은 지난해 출생 성비가 118.08을 기록했다. 그나마 2004년 124에 비해선 낮아졌지만,19세 이하에서 남성이 2377만명이나 많다고 한다. 다자녀 금지정책과 뿌리깊은 남아선호가 빚어낸 결과다. 앞으로 짝을 찾지 못한 청년들이 사회불만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출생 성비는 최근 4년간 106대를 유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셋째 이상 자녀의 성비다. 2000년 144.2에서 지난해 110.9로 드라마틱한 하강 추세다. 아들은 애써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부모의 인식 변화가 그 어떤 캠페인보다 효과적인 셈이다. 하지만 80~90년대 태어난 15~29세 연령대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47만명이나 많다. 중국의 걱정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