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日샤프에 10억弗 '수상한 투자'…삼성과 멀어지나

반도체 이어 LCD패널도 '脫 삼성' 여부 촉각
삼성 '年 6조원 부품고객' 견제에 위기감 증폭
애플이 일본 샤프의 LCD패널 생산라인에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란 외신 보도가 나왔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로부터 아이폰,아이패드용 패널을 공급받던 애플이 일본 기업 쪽으로 공급선을 다변화하려는 시도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및 태블릿PC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는 만큼 삼성 거래물량을 줄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시장에선 애플이 삼성전자에서 독점 공급받던 휴대폰용 모바일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칩 물량 일부를 대만 TSMC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이어 본격적인 '탈(脫) 삼성' 행보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의 연이은 삼성 의존도 줄이기

로이터통신은 18일 "애플이 아이폰 · 아이패드용 LCD패널을 확보하기 위해 샤프에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MF글로벌FXA 증권도 보고서를 통해 "애플이 샤프의 가메야마 공장에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가메야마 공장은 아이패드용 패널로 많이 쓰이는 저온폴리실리콘(LTPS) 패널을 생산하고 있다. 시장에선 애플이 작년 말 일본 도시바의 LCD패널 생산라인에 12억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샤프와도 손을 잡으려는 것은 한국기업,특히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 아이패드용 패널은 그동안 LG디스플레이가 주로 공급해왔으나 작년부터 삼성전자와 대만 치메이가 아이패드용 9.7인치 패널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뒤늦게 패널공급을 시작했지만 지난 1분기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최대 공급업체로 올라섰을 정도로 빠르게 물량을 늘려왔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샤프와 도시바에 대한 애플의 투자는 패널을 공급해달라는 선수금 성격이 짙다"며 "당장은 아니겠지만 삼성전자 물량을 샤프,도시바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로이터는 애플이 샤프에 투자하려는 이유를 삼성전자와의 특허분쟁에 따른 것으로 풀이했다. 애플이 지난 4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휴대폰 · 태블릿PC 관련 특허침해 소송을 낸 이후 반도체와 LCD패널 거래선을 삼성전자에서 일본 · 대만기업으로 잇따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애플은 그동안 삼성전자에 100% 맡겨왔던 휴대폰용 모바일AP 칩 공급을 대만 TSMC로 다각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TSMC에 차세대 아이패드용 AP 칩인 'A6' 시험생산을 맡겨 내년 이후 공급받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선 애플이 모바일D램 물량을 일본 반도체기업 엘피다에 몰아주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애플은 그동안 모바일D램을 삼성전자에서 50%가량,하이닉스로부터 30%가량 공급받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엘피다의 모바일D램 점유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며 "애플 쪽 공급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대 고객사의 변심에 커지는 위기감애플의 잇단 거래선 다변화 시도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의 샤프 투자는)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유보적인 반응을 내놨다. 그러나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삼성전자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한 해 동안 6조원어치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패널을 애플에 팔았다. 거래 규모에서 일본 소니에 이어 두 번째로 손이 큰 고객이다. 애플은 지난 1분기엔 2조1450억원어치의 부품을 구입해 소니를 제치고 '최대 고객사'에 오르기도 했다. 삼성 입장에선 애플이 공급처 다변화 전략을 펼칠 경우 장기적으로 수조원대에 달하는 부품 공급 루트를 잃을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애플의 거래선 다변화 전략이 삼성전자의 부품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는 삼성전자가 독보적인 부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애플 등 세트 업체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밀리지 않았지만,일본 · 대만기업들이 애플의 후원을 받으며 경쟁력을 갖출 경우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얘기했듯이 IT시장 주도권이 점점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폭스콘이 애플의 설계도대로 아이폰을 찍어내듯이 부품시장 지배력을 잃는 순간 삼성전자 역시 글로벌 중소기업과 같은 처지에 내몰리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