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를 품은 '샤넬 넘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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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과 스트라빈스키'
"작곡할 때 악보를 먼저 쓰나요?" "아뇨,피아노를 치면서 먼저 연주해요. 손가락으로 음악을 먼저 느끼고 싶으니까요. " "나도 디자인을 처음 할 땐 종이를 안 써요. 옷감을 직접 만지면서 질감을 느끼죠." 패션 디자이너 샤넬과 음악가 스트라빈스키는 대화하며 음악과 패션의 공통점을 수렴해간다. 샤넬은 스트라빈스키에게 옷을 만들어 입힌다. 그들은 곧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사진 · 감독 얀 쿠넹)는 명품 브랜드 창업자인 코코 샤넬과 20세기 클래식계의 천재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스캔들을 통해 명작 발레곡 '봄의 제전'과 향수 '샤넬 넘버5'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린다. 사랑과 예술은 한 몸이며 이성보다는 감성,인성(人性)보다는 수성(獸性)과 가깝다는 점을 상징을 통해 재치있게 묘사한다.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스트라빈스키에게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불륜이다. 두 주인공의 대사에서 악보란 이성적인 스트라빈스키의 아내를 의미한다. 창작 그 자체에는 아내의 존재가 필요없다는 함의다. 아내는 남편이 피아노로 두드린 음악을 악보에 정리해주는 비서이자 비평가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침대에 함께 누워도 섹스를 하지는 않는다. 스트라빈스키 곁에 그런 아내밖에 없었을 때 선보인 '봄의 제전' 초연은 청중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그렇지만 샤넬과 몸으로 사랑을 나누며 완성한 '봄의 제전'은 불후의 명곡으로 남았다. 봄의 제전은 그들의 사랑처럼 파격적이며 야수성을 드러내는 음악으로 평가받는다. '샤넬 넘버5'는 스트라빈스키에게 영원한 향기로 남고 싶은 샤넬의 열망이 빚어냈다. 그러나 샤넬이 결혼이란 제도를 의식하고,아내와 정부(情婦)를 구분할 즈음 그들의 관계도 막을 내린다. 오직 감각과 감성에만 집중해야만 러브 스토리는 지속되는 것일까.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