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월가 왜 '마라도나 효과'와 '버핏 신드롬'에 목매나?

글로벌 증시, 신뢰위기로 혼란…잦은 대책보다 '마라도나 효과' 절실
요즘 정책당국자일수록 상황이 어렵다고 한다. 남아 있는 위기 과제와 위기 후 찾아올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케인시안과 포스트 케인시안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월가에서는 '마라도나 효과'가 절실하다고 한다. 세계 축구사(史)에서 브라질의 펠레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아르헨티나의 영웅 마라도나는 존재만으로도 상대팀 선수들에게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경기 때마다 상대팀 수비수들은 그의 행동반경을 예측,압박해 들어왔고 덕분에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동료선수들이 골을 넣기가 쉬웠다는 데서 비롯된 용어다. 현 상황에 적용하면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장과 정책수용층이 알아서 행동하면 당면한 현안을 풀 수 있다는 얘기다. '마라도나 효과'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이 또한 월가에서는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확산되고 있는 '버핏 신드롬'과 '소로스 퇴조론'을 따져보면 그 답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부자가 되려는 모든 사람은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를 꿈꾼다. 그만큼 금융권에서 이 두 사람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르다.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칭송을 받는 버핏은 누구에게나 거부반응이 없다. 마치 이웃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긴다. 반면 소로스는 '냉혈인간'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으로 비쳐진다.

왜 이렇게 다른 평가가 나오는 걸까. 무엇보다 두 사람이 걸어온 길부터 다르다. 버핏은 부모에게 돈에 관한 모든 것을 어릴 적부터 배웠다. 소위 체화(體化)된 부자다. 이에 비해 소로스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유럽지역을 커다란 혼란에 빠뜨렸던 통화위기의 주범이라는 사실로부터다. 돈에 대한 관념도 다르다. 버핏은 부모 세대에게 돈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데 하나의 도구라는 가르침을 받아 몸에 익혔다. 돈을 벌거나 쓰는 데 있어서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반면 소로스는 돈이 주는 다양한 이점보다 돈 그 자체만을 버는 데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비쳐져 왔다.

돈에 대한 개념은 일상생활이나 투자방법,부자가 된 이후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일상생활에 있어서 버핏은 고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오래된 뿔테안경과 20년 이상 된 캠리 자동차,오마하의 작은 집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검소,그 자체다.

버핏만큼은 아니더라도 소로스 역시 일상생활에서 검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소한 일상생활은 이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슈퍼 리치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 특징이기도 하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은 버핏과 소로스의 다른 점이다. 두 사람은 돈을 버는 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크다. 돈에 대해 여유가 있는 버핏은 돈을 버는 데 조급해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적인 방법을 되도록 피한다. 이 때문에 단기적인 투기가 아니라 중 ·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가 가능해진다. 그때그때 시장흐름보다 큰 추세를 중시하기 때문에 '투자 피로'도 적다.

이 점에 있어 소로스는 상당히 다르다. 장기투자보다 초단기 투기를 선호한다. 소로스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1990년대의 경우 하루에도 몇 차례 각국의 통화와 주식을 사고판 적이 많다. 특히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외환과 같은 시장일수록 이런 투기행위를 즐긴다.

투기행위로 돈을 벌기 위해 시장에 순응하기보다 시장을 교란시켜야 한다. 소로스는 자신이 운용하는 타이거펀드 등의 시장주도력을 십분 활용해 1990년대 초 유럽 통화와 1990년대 후반 아시아 통화를 실제 여건보다 흔들어 놓으면서 위기로 몰아넣었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 때도 유로화에 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가 된 이후에도 두 사람이 걷는 길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버핏은 평생 동안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해 박애주의자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자녀들에 대한 상속도 인색하다. 이 점에 있어 소로스는 아직까지 베일에 숨겨져 있다.

이 모든 것이 두 사람이 다른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버핏은 '신드롬'이란 용어가 따라붙을 만큼 영향력이 더 커졌다.

그의 말 한마디와 행선지,보유종목 등이 세계인의 관심을 끈다. 반면 소로스는 '퇴조론'에 부닥치면서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까지 해체했다. 기본에 충실해 신뢰가 쌓이면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현안을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버핏 신드롬'과 '마라도나 효과'의 실체다. 미국의 '트리플 A'라는 상징이 깨지면서 증시가 신뢰 위기에 봉착해 '팻 테일(fat tail ·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두꺼워지는 정규분포에서 유래) 리스크'까지 발생하는 요즘 월가에서 이 신드롬과 효과를 갈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