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로 '인생 2막' 여는 경제관료

서사현 前산자부 실장, 건국대서 석사

"35년간 공직자와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등 주로 정책의 공급자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수요자 시각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

서사현 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자원정책실장(66)이 사회복지사로 변신했다. 오랜 공직생활을 해온 그가 22일 건국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동시에 사회복지사 자격도 갖게 됐다. 그는 특수대학원이 아닌 본대학원에서 아들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했다. 13개 과목 모두 A학점을 받았다. 이날 열린 건국대 학위수여식에서 석사학위 대표 수여자로 단상에 올라섰다. 서 전 실장은 1945년 8월15일 태어난 '해방둥이'다. 고려대 법대를 나와 1971년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까지 지냈다. 2002년엔 한전 자회사인 파워콤 사장으로 재직했다. 당시 그는 "공기업이라는 어항에 갇힌 파워콤을 풀어줘야 한다"며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했고 데이콤(2010년 LG유플러스로 통합)에 경영권을 넘기는 데 성공했다. 이후 '행복한 세상' 백화점을 운영하는 중소기업유통센터 사장으로 재직하다 2006년 임기를 마쳤다.

학위수여식이 끝난 뒤 그를 만나 2년 전 입학한 이유를 물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아버지의 병환이었다고 답했다. "2008년 아버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과 요양원에 가보니 노인 복지체계가 전혀 잡혀 있지 않았죠.저도 예순이 넘은 마당이라 이 문제가 곧 내 문제로 느껴져 사회복지학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대학원에서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보고 싶기도 했죠."

첫 학기에는 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며 반박하고 싶은 때도 많았다. 산업정책을 많이 다뤄온 그는 '돈 벌 생각(경제성장)은 하지 않고 쓸 궁리(복지)만 한다'는 생각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차츰 복지를 연구하면서 이해도가 높아졌다. "처음엔 내가 좀 무식했다"며 멋쩍게 웃기도 했다. 2년 동안 공부하면서 복지에 대한 철학도 생겼다. 그는 "복지의 정신은 인간 존엄성 회복이라는 문명 발달사와 맥을 같이한다"며 "복지만 생각하고 연구하는 사람도 사회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의 복지 논쟁에 대해서도 학문적인 소신을 밝혔다. "앞으로 다가올 고령 인구 1000만명 시대에 노인을 보호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오랜 경험과 지혜를 활용할 수 있도록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인생 2막을 봉사하는 자세로 보낼 생각이다. 지난 2월 명예직으로 있던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이사장에서도 은퇴한 그에게 더 이상 공직이나 명예 욕심은 없다.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노인복지분야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일하고 싶다고 한다. "나도 평생 혜택을 받고 산 사람"이라며 "여생 동안 내가 받은 것의 반이라도 돌려주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재산도 자녀들에게 상속하지 않고 모두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지요. 허허허."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