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트리플딥' 올 수도…결국 3차 양적완화 카드 꺼낼 것"

'닥터둠' 루비니, 세계 경제 전망

더블딥 가능성 50% 이상
기업들 투자 주저, 고용보다 해고에 적극…소비심리 위축 불가피

세계는 'G0(제로)' 시대
G20 협력방안 찾지만 주요 이슈 견해 다 달라…中은 공동이익 관심 없어
무표정한 얼굴로 비관적인 전망을 일삼는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에게 청중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스턴스쿨) 경영학석사(MBA) 신입생들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했다.

오리엔테이션의 일환으로 열린 '세계 경제'에 대한 패널 토론회에서 루비니 교수는 "나쁜 뉴스와 좋은 뉴스가 있다. 나쁜 뉴스는 세계 경제가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고,좋은 뉴스는 여러분은 2년짜리 MBA 과정을 지금 시작해 더블딥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웃음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이내 "트리플딥(삼중침체)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나쁜 뉴스"라며 닥터둠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윌리엄 실버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마리아 바티로모 CNBC 앵커가 함께했다. 한국경제신문이 단독으로 취재한 토론 현장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지난 몇 달간 미국 경제의 더블딥을 예언해왔다.

"경제가 악순환에 빠졌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확실한 환경이다. 기업들은 불확실성 때문에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관망(wait and see)하면서 '기다려보자'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월스트리트(주식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업들은 군살을 빼야 한다. 고용보다 해고에 적극적인 이유다. 이달 들어서만 주요 은행들이 12만명의 해고를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이는 다시 기업들의 투자를 저해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이미 각종 경제지표들이 악화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더블딥 가능성은 50% 이상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3차 양적완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는데 2차 양적완화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동의한다. 6000억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을 통해 시중에 돈을 뿌렸지만 은행들은 이 중 한푼도 대출에 사용하지 않고 Fed에 다시 맡겨놓았다. 첫째는 대출 수요가 없었고,둘째는 금융시스템이 다시 붕괴할 것에 대비해 은행들이 대출을 꺼렸기 때문이다.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부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완화된 통화정책이 잘 먹히지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 양적완화를 실시해야 하나. "문제는 다른 정책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첫째,재정정책의 경우 정도는 다르지만 미국과 유럽 모두 재정긴축에 나섰다. 이는 더블딥 위험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둘째로 2008년처럼 국가가 금융회사들을 후방 지원할 수도 없다. 정부 부채가 너무 많은 데다 그 빚들을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을 늘리는 방법이 있는데 문제는 모든 통화가 다 약세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쪽 통화가 약세면 다른 한쪽은 강세일 수밖에 없다. 화성이나 달과 무역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환율게임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다. 그래서 오는 26일 잭슨홀미팅에서 벤 버냉키 Fed 의장이 어쩔 수 없이 3차 양적완화 카드를 꺼낼 것으로 생각한다. 효과는 미지수다. 확실한 것은 미국은 중장기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은. 미국이 쇠퇴하면서 중국이 세계 경제의 패권을 거머쥘 것으로 보나.

"주요 20개국(G20)이 새로운 국제질서가 됐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강대국이 없는 'G0(제로)' 시대다. 글로벌 경제의 상호의존성을 감안하면 G20이 다 같이 모여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하지만 '이견(disagreement)'만이 가득하다. 재정정책,기후변화,금융회사 규제,국제 통화시스템,글로벌 불균형 등 주요 이슈에 대해 모두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세기의 영국이나 20세기의 미국처럼 리더십을 발휘할 국가가 없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고 하지만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어서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은 세계의 공동이익(public good)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다. 세계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미국이나 유럽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직은 아니지만 그럴 만한 위험이 충분하다. 정치적 리더십을 갖고 효과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유럽과 미국 모두 오랫동안 침체를 겪을 것이다. 경쟁력 있고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려면 '미래를 위한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어려운 구조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초당파주의(bipartisanship)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양당이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2년마다 한 번씩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약한 연정이 대부분이다. 17개 국가로 이뤄져 분기마다 한 번씩 선거가 있다. 5년 동안 여섯 번이나 총리가 바뀐 일본과 비슷하다. "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