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완장 찬 국회에 멍드는 기업가 정신

정치권 기업때리기 시장에 치명타…中企엔 대기업 성장의욕 위축시켜
세계가 국경 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판국에 지금 한국의 정치권은 대기업 때리기에 '올인'하고 있는 양상이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친(親)서민,공정사회,공생발전 등 대기업 때리기의 명분도 다양한 수사어로 화려하다.

대기업 때리기의 절정판은 지난주 5개 경제단체장을 출석시킨 가운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강화'를 주제로 열린 국회 공청회라 할 만하다. 그 다음날 한진중공업 회장과 노사분규 관련자들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국회 청문회 역시 못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여야 의원들은 출석한 기업인들과 현안의 원인이나 해법을 모색하는 생산적 소통 대신에 막말을 동원한 고압적 자세로 일관해 마치 기업 혼내기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대기업에 기합을 주는 완장 찬 국회라는 말이 그래서 적절하다. 출석한 기업인들의 면면을 보면,우리나라 글로벌 경제의 간판스타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수백만 또는 수천만명의 소비자들에 의해 선택받은 기업의 대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탈취,야수,악질 등의 말로 그들을 죄인 취급하는 것은 현명한 소비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에 대해 우리가 우려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업가 정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새로운 지식과 행동 방식을 창출하는 기업가 정신은 지속 가능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다.

여러 기업가들 중에는 그 품격에 따라 일상적 기업가,차익거래 기업가(arbitrageur),혁신적 기업가,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고 품격에 속하는 진화적 기업가 등 여러 부류가 있다. 진화적 기업가는 우리나라 경제의 틀을 마련하고 산업의 선도적 역할을 했던 고(故) 이병철,정주영,최종현 회장 등이다. 이들은 좀스러운 저(低)품격의 기업인이 결코 아니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반(反)기업 정서가 심할수록,경제 자유를 억압하는 규제가 많을수록,낮은 품격의 기업가 정신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을 착취자로 여기고 타도의 대상이라고 믿는 반기업 정서가 지배하는 경우,그들은 불안감 때문에,원대한 기업가적 비전을 세워서 모험적인 장기 투자를 단행하는 고(高)품격의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없다. 그 대신 안전하고 쉽게 돈을 버는 단기 투자처를 찾게 마련이다. 일감 몰아주기나 '통큰 치킨'에서 볼 수 있듯이,대기업이 연약한 중소기업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굳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고품격의 기업가 정신이 훼손됐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장기적이고 선도적인 투자 활동을 감행하는 고품격의 대기업이 드문 이유도 성공한 기업을 처벌하는 반기업 정서와 각종 규제 때문이라고 말해도 좋다. 대기업으로 하여금 골목길 상권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대기업으로 하여금 외국의 유명 브랜드를 가져와 손쉽게 장사하게 만드는 것도 대기업 때리기로 고품격의 기업가 정신이 훼손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때리기는 동반성장,공생발전의 명분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보호 정책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목적도 달성할 수 없을 뿐더러 중소기업의 기업가 정신까지 훼손시켜 책임정신,진취성과 모험심을 약화시키고 정부의 보호와 지원에 대한 의존심만 강화시킨다. 중소기업에서 기업가 정신의 손상이 가져올 치명적인 결과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는 의욕을 심각하게 위축받게 되는 것이다. 중소기업으로 머물러 있으면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보호를 받는 데 반해 대기업이 되면 증오의 대상이요,각종 규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기업 수가 적고 중소기업 수가 많은 것도 대기업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반감을 반영한 것이다. 결국 반기업 의식을 불어넣기에 여념이 없는 완장 찬 국회는 기업가 정신의 적(敵)이요 자유와 번영의 장애물일 뿐이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