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서민용 고금리 상품 압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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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손해 보면서 금리 더 주면 배임인데…"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서민 전용 은행 고금리 수신상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서민의 저축을 돕는 상품이 은행권에서 나온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길 일이지만 자칫 여러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의 서민 전용 수신상품 출시는 서민금융회사의 역할을 위축시킬 수 있는 데다 은행권의 역마진으로 인해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신용등급 9~10등급 계층 대부분이 연체자인 데다 여유자금이 많지 않아 수신상품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서민금융社 역할 위축·건전성 훼손" 부작용
저신용층 여유자금 많지 않아 효과도 의문
◆은행들 강력 반대금융당국은 그동안 서민금융 관련 대책이 대출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목돈 마련 등 서민들의 자산 형성을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신협이나 새마을금고 등에 적용해온 비과세 혜택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으나 예산의 한계에 부딪힌다는 게 당국의 생각이다. 때문에 금융당국은 올해 상반기 사상 최대 순이익을 기록한 은행권의 도움을 받아 서민 전용 수신상품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은행권은 역마진이 날 경우 주주로부터 경영상 배임죄로 고소당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관치금융 발상"이라며 "국가가 은행을 소유하던 시대에만 가능했던 논리"라고 비판했다. 은행이 서민을 위해 감수해야 할 비용은 연간 수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보통 시중은행의 1년제 정기적금 잔액은 평균 1조~2조원 수준이다. 금리를 1%만 올려도 100억~2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기존 금융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정기예금 금리는 은행권이 연 3%,새마을금고 신협 등 상호금융회사가 연 4%,저축은행이 연 5%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은행권이 금리를 높여 수신이 몰릴 경우 상호금융회사와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회사들은 반대로 수신이 줄어 대출 여력이 줄어든다. 일각에서는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제도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저소득 근로자에게 이자소득세를 면제해주고 금리를 더해준 재형저축은 1976년 도입했다가 실효성이 적고 재원 마련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1995년 폐지된 바 있다.
◆서민금융 정책'버블'우려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에 이어 은행권 서민 전용 수신상품 검토에 따라 중복 의미가 크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소금융,햇살론 등 2008년 이후 나온 각종 서민금융 정책들은 장기적으로 지속이 불가능한 구조"라며 "재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각종 서민금융 관련 정책이 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금융당국과 정부의 서민금융 지원 관련 정책은 난립 양상이다. 현재 서민금융 관련 상품을 내놓은 곳은 은행권과 새마을금고,신협,저축은행 등 2금융권을 비롯해 자산관리공사,근로복지공단,미소금융중앙재단,서울시,보건복지부,국토해양부 국민주택기금,주택금융공사,신용회복위원회,금융감독원의 이지론 등이다. 시행 중인 프로그램만 10개가 넘는다.
금융당국의 서민 전용 고금리 상품 추진에 대해 정부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건전성 관리 업무가 주업무이지 서민금융 지원이 본업이 아니다"며 "전시행정에 치중한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