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연말 인사 때 여성임원 대거 승진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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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여성인력도 사장 돼야"이건희 삼성 회장(얼굴)이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평소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언급해온 이 회장이 이번엔 여성 인력도 사장까지 돼야한다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말 삼성그룹 정기 인사에서 여성 인력의 대대적인 승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승진후보 부장급 200명 넘어…내년 이후 여성CEO 나올 듯
삼성전자 "임원 10% 여성으로"
◆이건희,여성 인력 적극 발탁 주문이 회장은 23일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 42층 집무실로 제일기획 최인아 부사장과 삼성전자의 심수옥 전무,이영희 전무,조은정 상무,삼성SDI 김유미 전무,삼성SDS 윤심 상무,삼성증권 이재경 상무 등 7명을 불렀다. 최인아 부사장은 2000년 삼성그룹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임원으로 발탁됐던 '삼성 우먼파워의 선두주자'다. 심수옥 전무와 이영희 전무는 각각 P&G코리아와 로레알을 거쳐 삼성에 스카우트된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들이다.
이 회장은 여성 임원들로부터 가정과 직장 일을 병행하면서 느끼는 애로사항을 조용히 경청했다. 한 임원은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 등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하는데 이 시기를 잘 넘기도록 회사와 동료들이 잘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임원은 "그룹에서 실시 중인 자율근무제,스마트워킹 등이 유용하지만 이런 제도를 잘 받아들이려는 사내 인식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여성 임원들의 말을 들은 뒤 "여러분들이 정말 일을 잘하고 있고,계속해서 잘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고 격려했다. 또 "여러분 말을 듣고 보니,여러 가지 어려움을 유연하게 잘 이겨냈다는 생각이 든다"며 "여성은 능력도 있고 유연하다.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여성도 자기 뜻과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려면 사장까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평소 여성 인력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이날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1997년 펴낸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다른 나라는 남자,여자가 합쳐서 뛰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다. 인적 자원의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21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어린이집을 들른 자리에선 '여직원들의 신청이 많지만 수용에 한계가 있어 대기 순번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여성 직원의 말에 "어린이집을 추가로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연말 정기인사 때 '女風' 불까삼성 관계자는 "'여성도 사장까지 돼야 한다'는 이 회장의 발언으로 연말 정기인사에서 여성 인력의 승진이 많을 것"이라며 "승진대상자 범주에 여성 인력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전했다. 현재 34명인 그룹 여성 임원 수가 대폭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이와 관련,삼성그룹에서 임원 승진후보군이라 할 수 있는 부장급 여성 간부는 총 211명이다. 삼성 내에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한 명뿐인 여성 CEO(최고경영자)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도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내년 이후 최인아 부사장 등 몇몇 여성 임원이 CEO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계열사별로도 여성 인력 채용과 승진 기회를 넓히는 각종 후속조치가 뒤따를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계열사 가운데 가장 먼저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중을 2020년까지 10%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전체 임원 972명 가운데 여성 임원은 13명에 불과한데 앞으로 10년 안에 100명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태명/정인설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