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시험 국가공인 1호 TESAT] 엔화 강세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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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택선 교수의 생생 경제 (4)엔화의 강세가 심상치 않다. 국제금융위기와 미국 유럽경제의 더블딥 우려 속에서 엔화의 가치는 전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엔화의 '기세가 등등하다'는 표현을 써야 되는 상황이지만 왠지 그런 표현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일본은행은 치솟는 엔화가치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연일 엔화를 풀어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유럽의 금융위기, 미국의 신용등급하락으로 세계경제가 기댈 곳은 이제 일본 뿐이라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 수출이 어려워져 일본경제마저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최근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외환시장에서 환율의 결정이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새삼 보여준 사례로 들 수 있다. 환율의 결정은 교과서적으로 볼 때 외환에 대한 수급에 기초한다. 외환의 수급은 다시 경제의 펀더멘털에 좌우되므로 결국 경제가 얼마나 건실한가의 여부에 따라 통화의 가치가 오르거나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번 쓰나미 여파로 일본 경제의 어려움이 예측되었을 때도 엔화가치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일본 경제의 어려움으로 일본이 국제자본시장에서 엔화를 회수한다면 엔화가 부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경제가 어려워지면 국제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를 겪을 것이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심리 때문에 엔화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대되었던 것이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동시에 더블딥에 빠지게 되면 세계경제의 침체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고, 역시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심리로 엔화에 대한 선호가 급격하게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일본기업들이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경제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이 낮다는 점과 일본의 투자자들이 국내편향(home bias)이 강해 대외충격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던 일본경제가 200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저성장으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당에, 위기 때 마다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엔화의 강세는 단기적으로 우리의 수출경쟁력을 강화시켜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제경제의 전반적인 침체를 초래한다면 우리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당장의 손익계산 보다도 원화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 경제학 교수 tsroh@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