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디자인은 사회변화 '촉매제'…과잉 땐 소통방해

디자인과 진실 | 로버트 그루딘 지음 ㅣ 제현주 옮김 ㅣ 북돋움 ㅣ 328쪽 ㅣ 1만6800원
일본 다도(茶道)의 스승이라 일컬어지는 센노 리큐.16세기 값비싼 다기와 화려한 예식이 만연했던 시대에 그는 다실의 크기를 줄이고 입구의 높이를 1m도 안 되게 만들었다. 차를 마실 땐 누구나 세상의 지위와 권위를 내려놓고 그저 '차를 마시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불렀을 때도 차를 마시느라 약속시간에 늦은 그였다. 군주의 눈에 난 다도예식의 디자이너는 결국 1591년 어느 봄날 자결을 명령받고 세상을 떴다.

《디자인과 진실》의 저자는 "디자인이란 경쟁력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진실이요 자유"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생활용품이건 건축물이건 나아가 도시의 디자인도 그것으로 인해 보여지는 가치를 논하기 전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정말 그랬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9 · 11 테러 이야기.저자는 1962년 건축가 미노루 아마사키가 설계한 세계무역센터가 뉴욕의 경제 번영을 세계 만방에 자랑하기 위해 디자인 된,아니 '마구 주물러 댄' 건축물일 뿐이라고 비난한다. 비상 시 보강구조와 대피시설은 커녕 뉴욕의 메카를 만들겠다면서 이슬람교의 신성한 무늬를 흉내냄으로써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테러 대상으로 지목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 기록적인 폭우로 물난리를 겪은 '디자인 서울'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든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관련,"디자인으로 서울의 위험한 이미지를 씻겠다"던 서울시장의 디자인관을 지적하면서 "그에게 디자인이란 밖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제3자의 시각이었던 듯하다"고 꼬집는다.

이 외에 르네상스 시대의 휘황찬란했던 성당,1950년대 포드의 실패작 '엣셀'(Edsel) 자동차,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사저 '몬티첼로' 등 디자인에 얽힌 읽을거리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