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평창, '나가노의 교훈' 잊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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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시설 활용…실속올림픽 지향"빚을 내서라도 동네잔치에 온 손님은 융숭히 대접해야지."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미덕이다. 88올림픽에 온 외국손님을 극진히 대접해 '원더풀 코리아'를 세계에 알렸고,2002년 월드컵에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경기 후 3년 책임지는 준비하길
다음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삼수 끝에 유치했으니 그만큼 거는 국민적 기대도 크고,벌써 강원도민은 세계적 스포츠 메카 탄생 꿈에 한창 부풀어 있다. 미국 동부의 조그만 도시 레이크 플래시드가 두 번의 동계올림픽을 열어 세계적 관광지로 탈바꿈했듯이 천혜의 자연여건,강원도민의 열정을 생각할 때 평창이라고 못할 건 없다. 하지만 제1회 샤모니 대회부터 21회 밴쿠버 대회까지 훑어보면 흑자 동계올림픽은 겨우 토리노,삿포로 등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지난해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밴쿠버도 수십억달러 적자를 내고 허덕거리고 있다. 우리가 그리 성공을 자축하던 2002년 월드컵의 10개 경기장도 서울만 빼곤 아직도 돈 먹는 애물단지로 남아 있다. 따라서 지금은 유치 성공 그 다음 단계에 대해 차분히 주판알을 튀겨볼 때다.
이번 평창대회는 꼭 강원도의 '지속적 발전'과 연결되는 동계올림픽이 돼야 한다. 국내 연구소들이 책임 없이 내놓은 최대 60조원에 이르는 경제유발 효과에 고무돼 벌써부터 과잉투자 조짐이 보이고 있다. 잘못하면 빛 좋은 개살구 잔치가 돼 실속은 엉뚱하게 외지의 건설업자,부동산 업자들이 차리고 강원도민은 잔치 후 덩그러니 남겨진 골칫거리 시설물 관리만 떠맡을 수도 있다. 따라서 모든 투자는 올림픽 후의 사용 용도를 고려해 지역의 지속적 발전과 연계되는 것은 국제수준으로 잘 짓고,안 그런 것은 모두 가건물로 지어 미련 없이 철거해 버려야 한다.
다음으로 과잉투자가 뒤따르게 마련인 하드 파워보다는 소프트 파워에 바탕을 둔 '실속올림픽'을 해야 한다. 9000억원짜리 선수촌,몇조원이 들어가는 고속철도 건설이 꼭 필요할까? 외국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려고 모든 걸 새로 지을 필요는 없다. 외국의 성공사례에서 보듯이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평창 주변에 무수히 들어선 펜션을 셔틀 시스템만 잘 만들어 활용하면 구태여 숙박시설에 그많은 돈을 들일 필요 없다. 대신 친절한 서비스,전통문화 접목,정보기술(IT)을 활용한 효율적 대회운영 등을 통한 '소프트 파워'를 늘릴 필요가 있다. 이왕 평창에 꿈을 실을 바에는 겨울 스포츠메카가 아닌 사계절 복합스포츠 · 웰빙 허브(HUB)의 큰 그림을 그리자.사실 겨울 한 철 손님 가지곤 막대한 시설투자의 채산성을 맞추기 힘들 것이다. 싱가포르와 태국처럼 국제적 의료시설,각종 웰빙 시스템을 만들어 봄,여름,가을에도 외국부자들이 찾아오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가노의 교훈을 잊지 말자.1998년 올림픽이 끝나자 주최 측은 2800만달러 흑자를 냈다고 떠벌리며 성공을 자축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00억달러가 넘는 빚잔치여서 지금도 지역주민들은 이를 갚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행사 준비 팀과 올림픽 후 시설관리 책임자를 따로 두었기 때문이다. 지금 '평창 꿈 열차'를 운전하는 강원지사나 관계자들 모두 올림픽 준비에 올인하고 있다. 잘못하면 나 몰라라 식 투자를 해 화려한 경기를 치르고 박수 받으며 무대에서 퇴장하고,남겨진 골칫거리 시설물 관리는 다른 사람 몫이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선 평창올림픽 준비위원회가 아닌 'D+3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올림픽뿐만 아니라 경기 후 3년간의 잔여시설 활용까지 일괄적으로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우리에게 저절로 굴러 떨어진 복이 아니다. 잘하면 평창이 '한국의 레이크 플래시드'로 도약할 수 있지만,첫 단추를 잘못 끼워 준비를 잘못하면 겉만 번지르르한 17일 간의 빚잔치로 끝나 그 부담이 고스란히 강원도민과 국민세금이 될 수도 있다.
안세영 < 서강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