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꿰뚫는 '킬러 본능'…파산 직전 애플 '세계 최강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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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전격 사임 - 애플과 함께 한 잡스 '영욕의 35년'
차고서 세계 첫 PC 생산…마우스·아이폰 등 혁신, 35년 만에 IT 절대강자로
서른 살 회사서 쫓겨나 97년 복귀…부활 이끌어
암 진단에도 신제품 열의…외신 "잡스시대 끝났다"
"열 살인가 열한 살 때였어요. 에임스에 있는 NASA 연구소에서 이리저리 선으로 연결된 단말기를 처음 봤죠.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 데스크톱 컴퓨터는 휴렛팩커드(HP)의 9100A였어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고집불통에 반항아였던 스티브 잡스가 좋아했던 게 딱 하나 있었다. 컴퓨터였다. 잡스가 21세가 되던 1976년 4월1일.고등학교 친구인 천재 개발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당시 잡스가 다니던 게임업체의 동료 로널드 웨인이 잡스의 집 차고에 모였다. 수중의 1300달러를 탈탈 털어 물건을 샀다.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며 세상을 바꾼 애플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애플과 잡스는 혁신의 아이콘이다. 1983년엔 마우스로 조작하는 최초의 컴퓨터 '리사'를 내놓았다. 잡스는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성공한 벤처기업인으로 자리잡는 듯했다. 그러나 잡스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1984년 야심차게 내놓은 매킨토시가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목표의 8분의 1인 25만대밖에 팔지 못했다. 고집스러운 성미도 불화의 근원이 됐다. 결국 이듬해 자신이 데려온 최고경영자(CEO) 존 스컬리에 의해 쫓겨났다.
잡스가 떠난 애플은 고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의 '윈텔 동맹'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IBM의 선전으로 애플의 PC 시장 점유율은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 '매킨토시 포터블'과 최초의 PDA '뉴턴'은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1995년 마지막 분기에는 6900만달러 적자를 냈다. 결국 1997년 애플은 잡스에 SOS를 보냈다.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환부를 도려냈다. 50여종의 제품을 4개로 줄였고 직원 65%를 감원했다. 그리고 애플은 다시 '게임 체인저'(비즈니스인사이더)가 됐다. 1998년 아이맥을 출시,1년 만에 200만대를 판매하며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아이팟(2001년) 아이폰(2007년) 아이패드(2010년) 등 내놓는 제품마다 성공하며 MP3 스마트폰 태블릿PC 클라우드시스템 등 정보기술(IT) 업계뿐 아니라 음악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잡스가 "버튼은 하나 이상 만들지 말라"고 주문해 개발된 아이팟은 럭셔리 디자인의 지평을 열었다. '아이튠즈'는 디지털 음원 시대의 신호탄이었다. 아이폰은 휴대폰 업계의 강자로 군림했던 노키아 모토로라 RIM을 낙오자로 만들었다. 3년9개월 만에 판매량이 1억대를 넘어섰다. 6월 잡스는 '아이클라우드'를 선보이는 자리에서 "10년 전에는 PC가 디지털 생활의 허브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PC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24일(현지시간) 잡스가 돌연 사임을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애플의 이사회 의장이자 임원,직원으로 남고 싶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외신들은 일제히 한 시대의 종결을 논했다. 허핑턴포스트는 'iQUIT'이라는 말을 대문에 걸었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i' 시대를 구축한 잡스가 사임했다는 의미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은 잡스의 시장을 꿰뚫어보는 킬러 본능으로 운영됐다"며 잡스가 곧 애플의 경쟁력임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