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회사채는 거들떠도 안본다

금융 불안에 기업 자금조달 양극화…초우량 기업은 장기채 발행 잇달아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이 양극화되고 있다. 신용경색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비우량 회사채를 기피하는 반면 안전자산인 국고채와 초우량 회사채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어서다. 일부 중견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자 신주인수권부사채(BW) 시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초우량 기업들은 장기채 발행 기회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회사채 발행 어려워 BW 선회동부건설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1000억원의 BW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전날 시가총액(약 1300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BW가 발행되면 주주가치가 희석될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내면서 이날 동부건설 주가는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동부건설이 주주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BW를 발행키로 한 것은 비우량 회사채 시장이 경색됐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시장에서 신용등급이 BBB인 회사채에 요구하는 이자를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이자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BW 발행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BW의 만기는 2014년 11월,수익률은 연 7%다. 신용등급이 같은 코오롱건설 회사채가 최근 연 9.5%에 유통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자부담을 2%포인트 이상 낮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채권 투자자들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회사채 투자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용등급이 BBB 이하인 기업은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증권사 회사채 발행업무 담당자는 "경기 불안감 탓에 국고채 금리와 회사채 금리 간 격차(신용스프레드)가 벌어지는 추세"라며 "BBB급 회사채는 물론이고,웬만한 우량 회사채도 수요가 별로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초우량 장기채 '절호의 기회'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이 아니면서도 높은 투자수익률을 챙길 수 있는 상품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이런 수요는 초우량기업의 안정적인 자금조달 수요와 들어맞으면서 장기채 발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용등급이 AAA인 KT는 26일 2500억원 규모의 만기 10년짜리 회사채를 발행한다. 투자수요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장기채 수요가 몰려 발행금액을 당초 계획보다 늘려 잡았다. 금리는 연 4%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남부발전도 지난달 15년과 10년 만기 채권을 연 5% 미만의 금리에 각각 발행했다. 투자자들의 성향 변화는 '가장 안전한 상품'인 국고채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고채 20년물 금리는 이날 연 3.91%로 7월 이후 0.55%포인트 하락했다. 10년물과 5년물은 각각 0.49%포인트와 0.44%포인트 하락해 20년물에 비해 금리 낙폭(채권가격 상승폭)이 덜했다. 만기가 긴 쪽에 수요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신용위험 기피 현상과 이로 인한 자금조달 시장의 양극화는 대외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길기모 메리츠종금증권 심사분석팀장은 "미국과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불안이 잦아들 때까지 회사채 투자자들은 조심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