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의 '월요전망대'] 위기, 실물로 전이되나…수출 등 핵심지표 주목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6일 퇴근 무렵 국제금융국으로부터 짤막한 보고를 받았다. 한국시간으로 이날 밤 11시에 예정된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의장의 잭슨홀 연설에 관한 내용이었다. 예상되는 세 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요약 설명이었다. 이날 밤 발표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심야에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고 한다.

27일 오전 추석을 앞두고 서민 체감물가를 점검하기 위해 안양 남부시장을 방문한 박 장관에게 잭슨홀 연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더니 "어젯밤에 전화가 안 왔던데요"라고 말했다. 시장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둘러 표현한 것이다. 박 장관은 27일 오후 세계육상대회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로 가면서 잭슨홀 연설 관련 보고서를 읽었다. 경제 전반을 총괄하는 박 장관이 요즘 가장 유심히 들여다보는 분야는 '대외 악재가 국내로 전이되는 위기의 전염경로'다. 이 중 외화 유동성 문제와 직결되는 외환보유액과 외환시장 동향은 장관 출근에 앞서 보고서가 책상 위에 올라간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내달 초 새로운 경기부양책을 발표하기 전까지 '정중동'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문가 관측이 우세해지면서 일단 숨을 돌린 상태다.

문제는 실물 분야다. 미국의 내수시장은 연간 10조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다. 미국이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에 빠질 경우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수출산업이 타격을 받고 그 영향은 내수로 직결된다. 설비증설이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연일 최저치를 갈아치우면서 폭락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불안한 시장심리를 반영한다.

실제로 이달 들어 디스플레이와 정보기술(IT)관련 제품의 주문량이 급감하는 등 수출에서 그 징후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번주에는 글로벌 재정위기가 향후 국내경기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경제지표들이 무더기로 발표된다. 29일 한국은행의 7월 국제수지 잠정치를 시작으로 31일 산업활동동향,내달 1일 수출입동향이 잇따라 나온다.

국제수지는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포인트다. 외환보유액과 직결되는 숫자여서 환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6월 경상수지 흑자는 29억9000만달러로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상반기 전체로는 90억6000만달러로 한은 예상치인 94억달러에 못 미쳤다.

30일 나오는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제조업의 체감경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6월과 7월 2개월 연속 BSI는 91에 그쳤다. 지난 2월 이후 최저수준이다. 경기를 나쁘게 보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다. 분위기 반전을 이뤄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9월 첫 날 나오는 8월 수출입동향을 통해서는 하반기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7월에는 수출액이 506억달러로 월간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63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상승세가 지속될지 관심이다.

2일에는 한은이 8월 말 외환보유액을 발표한다. 한국의 대외채무가 심리적 지지선인 4000억달러가 무너진 상황이어서 실질적인 외화지급여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지난달 기준으로는 3110억3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심기 경제부 차장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