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특허전쟁에 출사표 내기 위한 조건

특허자본 약진…융합형 인재 필요
독창성 평가받는 제도·문화 절실
3주년을 맞이한 글로벌 경제 위기는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다. 아울러 21세기 경제의 총아로 불리는 지식형 서비스 산업계에도 지각 변동을 가져왔다. 공세적 자금 운영으로 성장 가도를 달렸던 투자은행(IB)업계가 주춤하는 사이 특허자본(IPC)업계가 약진하고 있다. 특허권을 사고파는 한편 특허 관련 소송 등을 통해 지식재산권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새로운 융합(convergence) 업태가 각광을 받고 있다.

IB는 위기 발발 이후 다양한 규제에 직면하고 있다. 브라질,인도네시아 등 신흥 경제 대국들은 투기성 자금 유입을 막는다. 단기 해외 차입 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외환시장 내 파생상품을 규제한다. 선진국도 규제 장벽을 높였다. 미국은 상업은행이 헤지,사모 펀드 및 기타 자기매매 부분으로 진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대형금융회사의 인수 · 합병을 제한하고 있다. 영국은 금융거래에 집단소송 절차를 도입하고 금융서비스기구(FSA)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반면 IPC의 주가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활황의 주역은 특허 전쟁의 양상을 띠며 전개되는 정보기술(IT)업체들의 첨예한 경쟁.구글은 특허를 일거에 확보하겠다며 모토로라모빌리티(MMI)를 인수했다. 애플은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꺼냈다. 단 한 대의 단말기도 생산하지 않는 마이크로소프트는 특허 관련 로열티 덕분에 휴대폰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IPC의 대두는 우리나라가 지식 서비스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IPC는 IB는 물론 법률,교육 의료 서비스 분야보다 진입 장벽이 낮다. 우선 우리나라는 IPC 업계의 '원시자본(原始資本)'격인 특허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는 9686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미국,일본,독일,중국에 이어 세계 5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특허생산성이 대단히 높다. 국제지식재산권 지표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10억달러당 특허 출원건수는 102.6건,연구개발 비용 100만달러당 출원건수는 3.3건으로 모두 세계 1위에 올랐다. 아울러 선진국들도 인력난에 시달린다. IPC는 융합형 인재가 주역이다. IPC 종사자는 특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과학 기술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특허 분쟁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한 자금을 조성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다양한 자격 요건을 갖춘 맞춤형 인재는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도 아직 찾기 힘들다. IB 인력을 배출하는 MBA나 법률 인력을 키우는 로스쿨 같은 제도화된 양성 과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 제도와 법규 마련 작업도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제외한 유럽 25개국은 올해 3월에서야 단일 특허 제도를 도입하는 데 합의했다. 영국도 지난해 들어 IPC 시대에 부합하는 특허 제도 마련에 착수했다. 이언 하그리브스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지식재산권 제도 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미국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허 분쟁과 출원 과정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개혁안은 일러야 올가을 입법화될 전망이다.

물론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무엇보다 지식재산권 침해를 경시하고 특허를 통한 가치 창출에 대해 무관심한 문화가 문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련 업체는 물론 학계와 정부 관료,정치권이 하나가 돼야 한다. 인재를 육성하고 신기술과 발명, 그리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평가를 받는 제도와 문화를 가꿔야 한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우리나라도 특허전쟁에 출사표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위기는 우리 경제 발전사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억되게 될 것이다. 지식 서비스산업 분야에서도 경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약의 계기로 기록되게 될 것이다.

윤계섭 < 서울대 경영학 명예교수 / 인텔렉츄얼 디스커버리 이사회 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