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철 칼럼] 언제까지 집합시킬 것인가

재계 총수 소집은 개발연대 구습…'기업은 동반자' 인식전환 필요
늘 그런 식이다. 참석자들은 웃으며 나온다. 곧이어 의미있는 모임이었다는 청와대 홍보수석의 설명이 뒤따른다. 대통령과 30대 그룹 총수의 간담회 얘기다. 경제 5단체장과의 만남도 그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과 30대 그룹 총수들의 오찬 간담회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만남이 이뤄지기 전에는 으레 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얼어붙는다. 정부는 재계가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들이민다.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는 압박이 대부분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압박의 강도는 높아진다. 급기야 대규모 간담회가 마련된다. 엄숙한 회의가 끝나면 재계는 투자와 인력채용 계획을 순차적으로 발표한다. 이미 확정된 계획을 다시 포장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급조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렇게 소극(笑劇)은 되풀이된다. 어제 간담회는 모양이 더 이상하다. 참석자 모두 만족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간담회가 이뤄진 배경을 보면 왠지 씁쓸하다.

이번 모임은 이 대통령이 8 · 15경축사에서 제시한 '공생 발전'을 직접 설명하기위해 마련됐다. 공생 발전은 모든 경제주체가 상생 번영하기 위한 시장경제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됐다. 재계는 공감하면서도 불안해하는 표정이다. 대 · 중소기업의 동반성장과 사회적 공헌 등에 대한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인식의 혼선은 공생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한 데서 생겼다. 30대 그룹 총수들마저 대통령의 해설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아젠다라면 일반 국민들의 귀에는 들어올 리가 없다.

물론 재계 총수들은 공생 발전의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안다. 청와대의 요구사항도 파악했을 것이다. 재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이 이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간파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기업이 강요된 듯한 공생 발전 이행방식에 우려를 표시하고 그것이 청와대와 재계의 갈등으로 비쳐지면서 간담회라는 형식을 통해 정리 정돈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5월 이 대통령과 경제 5단체장의 간담회도 비슷한 모양새였다. 당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오고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재계는 긴장 모드로 들어갔다.

정부 내 반기업 정서가 고조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 탓이다. 당황한 이 대통령은 정부의 생각이 무엇인지 직접 설명하겠다고 5단체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모임이 끝난 뒤에는 웃고 헤어지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서로 이해하게 됐다'는 상투적 평가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역시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정부의 대기업관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는 시시콜콜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경영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의 기업인들은 어느 쪽으로 바람이 불지 육감적으로 안다. 그들은 '봉숭아 학당'에 다니는 엉터리 학생들이 아니다. 대통령과 재계 총수의 만남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취임 초기 국정 이념을 분명하게 전달하거나,경제상황이 어려울 때 자문을 얻기 위한 간담회라면 누군들 싫어하겠는가.

얼마 전 여름 휴가를 즐기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휴양지에서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케네스 채놀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회장 등과 화상 회의를 가졌다. 그들에게 일자리 창출에 관한 아이디어를 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 기업인들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우리처럼 정부 관계자들의 헷갈리는 발언으로 재계가 혼선에 빠지고 불만이 높아진 뒤에야 대통령이 설명해주겠다고 나서는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청와대와 재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때가 됐다. 재계 총수들을 교육생쯤으로 보는 개발연대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념과 철학은 정교한 정책으로 반영하면 된다. 언제까지 재계 총수들을 집합시킬 것인가. 고광철 논설위원 / 경제교육연구소장


북한 비키니수영복
배꼽 훤히 드러내고

'본 차이나' 도자기
항의가 끊이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