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료 못받은 변호사 "돈 얘기를 어떻게…", 화단 밟고 지나가다가도 "남의 눈 신경 쓰여"

金검사 & 李변호사…법조계 현장스토리 - 법조인의 품위 유지

품위용 '드레스 코드'
국산구두 즐겨 신다가도 고객 만날 땐 '명품'으로 쫙

검사도 공무원인데…
"검사 초봉 1억 아니냐?" 동창회비 더 내라 요구

아쉬운 소리도 못하고
2년 후배 판사 만난 변호사, 자존심 때문에 아는 척 안 해
6년 전 퇴임하고 로펌에 들어간 K변호사가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를 후배 판사와 함께 거닐 때였다. 도로 가운데 있는 화단을 지나 가로질러 가려고 하자 후배 판사가 깜짝 놀라며 "왜 이러시냐"고 말렸다. K변호사는 "보는 눈도 많은데 무단횡단하면 어떡하냐는 뜻이었다"며 "판사들은 의외로 별 것 아닌 상황에서도 주변 이목을 신경쓰느라 융통성을 발휘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검정색 고급 세단,명품 양복과 서류가방…. 일반인들이 그리는 법조인상이다. 하지만 법조인들은 오히려 그런 '선입견' 때문에 괴롭다.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안 써도 될 돈을 쓰고,실속을 못 챙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로펌 변호사,의상과 차량 관리는 필수

판사 출신의 이모 변호사는 4년 전 로펌으로 들어가면서 차를 쏘나타에서 스테이츠맨으로 바꾸었다. 쏘나타를 계속 몰겠다고 하니 로펌 측에서 "그러면 안 된다"며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구성원 변호사는 오피러스와 에쿠스,체어맨,스테이츠맨 중 하나를 몰아야 한다는 것.물론 차량은 법인비용으로 리스했다. 그 이후로 이 변호사는 양복도 검은색이나 감색 말고는 입어본 적이 없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평소에 금강제화 등 국산 구두를 즐겨 신다가도 의뢰인을 만나는 날이면 페라가모,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 구두로 갈아신고 나간다. 주 고객인 대기업이나 소위 '돈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그들의 '수준'과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다른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일부러 몽블랑 만년필을 애용한다. 같은 이유다. 재경 지검의 한 검사는 "10년 전 초임 시절 암묵적으로 검사들 사이에서는 끈있는 구두,양복 재킷은 투버튼,여름에도 긴팔 와이셔츠,검은색이나 감색 계열 양복 등의 드레스 코드가 있었다"고 말했다.

◆"돈 얘기를 어떻게…"

'돈 얘기'를 꺼내는 것이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법조인들도 많다. 변호사들끼리 농담으로 "여태껏 못 받은 수임료와 성공보수만 다 받아도 집 한 채는 살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뼈 있는 얘기'다. K로펌의 한 변호사는 끝난 지 1년이 다 된 사건의 자문료와 성공보수금 등 수천만원을 안 주고 있는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어 기껏 했다는 얘기가 "'경리부에서 자꾸 재촉하네요. 해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였다"며 "명색이 변호사인데 돈 달라는 얘기가 목구멍에서 잘 안 나온다"고 털어놨다. 연차가 있는 중견 법조인일수록 '품위'와 '격조'를 중요시한다. 이들은 서면에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꺼려한다. 예컨대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는 표현은 '격이 떨어진다'며 "정직하지 못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쓴다. 이들은 의뢰인이나 대기업 법무팀 직원들을 상대로 한 접대문화도 거부한다. "변호사가 변호만 잘하면 되지 웬 접대냐" "내 명성을 듣고 의뢰인들이 제 발로 걸어오게 하면 되는 거다"는 식이다.

◆"공무원일 뿐인데…주변 시선 버거워"

한 검사는 오랜만에 모교 동창회에 나갔다가 당황한 경험이 있다. 동창회 간부가 "오랜만이네,이번에 우리 학교가 55주년이 돼서 말이야…"라고 운을 뗀 뒤 "넌 검사니까 기부금 좀 더 낼 수 있지 않아?" 라고 당당하게 기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검사도 월급쟁이 공무원인데 사람들이 참 사정을 모른다"고 털어놨다. 황당경험 2탄.법조계 사정을 잘 모르는 친구가 "검사는 초봉이 1억원 정도 되지 않아?"라고 묻기에 아니라고 해명했더니 친구가 "검사도 월급받아서 사냐?"고 되묻더라는 것이다. 이 검사는 "국가공무원인 검사가 월급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것도 모르는 친구가 하는 말이 괜시리 불쾌하더라"고 말했다.

◆'품위' 때문에 인맥 활용도 못하고…

법조계에서 '전관예우'나 '인맥'을 통해 사건을 수임하고,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불문율이다. 하지만 품위를 생각해 이를 노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법조인들도 많다.

비(非)법대 출신인 한 판사는 몇 달 전 재판을 진행하다가 낯 익은 변호사를 봤다. 재판 과정에서는 물론,사건이 마무리 된 후에도 누군지 몰랐는데 나중에 우연히 같은 대학 같은 학과 2년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의뢰인이 그 변호사가 제 대학 2년 선배인 걸 알고 사건을 맡겼는데,변호사가 차마 후배한테 아쉬운 소리를 못하고 그냥 재판에 들어온 모양이에요. 자존심 때문에 인맥 활용을 안 하는 변호사가 생각보다 좀 있더라고요. "

◆법조인 '품위'는 '공공성' 지키기?

진정한 품위유지란 법조인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상업성에 경도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변호사는 "변호사법 24조의 품위유지 의무가 단순히 외모,태도에 대한 조항은 아닐 것"이라며 "'직무 수행 시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처럼 법조인의 기본의무를 다하는 것이 품위를 유지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또 "소위 '돈 되는 사건'만 골라 수임하고,승소가 어려워 보이는 집단소송을 기획하는 등 상업성에 치중하는 변호사들이 오히려 법조인의 품위를 해치는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심성미/임도원/이고운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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