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기계 '급브레이크'…8월 내수 '반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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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등 설비투자 축소에 주요업체 계약물량 급감국내 대형 공작기계 생산업체인 A사는 한 중소기업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1억원짜리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말 때문이었다. 실물경기 침체 우려로 계획했던 설비투자를 보류해야 하기 때문에 500만원의 계약금을 포기하더라도 주문할 수 없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수요 폭증으로 공작기계를 주문하면 서너 달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다.
수출까지 줄며 '직격탄'…경기침체 '신호탄' 분석도
◆8월 내수 수주물량 '반토막'지난해 초부터 국내 공작기계 수주는 자동차와 정보기술(IT) 분야 등을 비롯한 제조업 전반에 걸친 설비투자 확대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까지도 사상 최고치 수주액을 경신했다. "주문을 받아도 물건이 없어 못 판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공작기계 수요가 급속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매월 500~600대 수준이던 두산인프라코어의 국내 수주량은 지난 7월 450여대로 줄었고 지난달엔 300대 수준으로 주저앉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수주 규모와 비교하면 '반토막'이 난 셈이다. 700~800대 수준을 유지해온 수출 물량도 500대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는 그동안 매월 1200대 안팎의 수주 물량을 유지해왔다. 지난 5월에는 한 달 수주만 2000대를 넘기도 했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초부터 경기침체 우려로 기업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국내 주문량이 급감하고 해외 물량도 감소세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현대자동차에 대는 물량이 많은 현대위아는 감소세가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공작기계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공작기계 생산업체 50개의 월별 수주액도 줄고 있다. 지난해 1월 2087억원이었던 월별 국내외 수주액은 올 3월 5255억원까지 증가했다. 이후 올 상반기 내내 매월 4000억원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 6월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6월 3812억원이었던 수주액은 7월 3254억원으로 줄었다. 8월엔 2000억원 중반대를 기록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 연말부터 공작기계 생산업체들의 생산량과 가동률도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업종 하락세로 수요 꺾여전문가들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글로벌 경기불황 속에서 질주해온 주력 업종의 '선전 효과'가 끝나고 부품 및 중소 협력업체의 투자 축소로 이어지면서 공작기계 수요가 줄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공작기계 국내시장을 삼분해온 자동차,일반기계,전자 업종 가운데 전자분야가 침체되면서 관련 수요도 급속히 감소했다는 얘기다.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의 부진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 관계자는 "LCD 관련 신규 설비투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자동차 일반기계 조선 등과 관련된 수요가 어느 정도 유지되면서 공작기계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시장 침체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기계 부품을 만드는 장비'인 공작기계 수요가 감소하는 것은 각 기업들의 설비투자 축소를 의미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공작기계 수요 감소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을 포함한 국내 기업들의 투자가 줄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공작기계 수요 감소세를 실물경기 침체로 보기엔 아직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성기종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상반기에 공작기계 생산업체들이 가격을 5~10% 올리면서 그 이전에 가수요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요가 줄어든 면이 없지 않다"며 "9월 이후에도 수요가 계속 줄어드는지 더 추세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공작기계주조,단조 등으로 만든 부품을 가공하는 기계.밀링머신,드릴링머신,머시닝센터,조각기 등이 있다. 기계산업의 기초가 되는 장비로 이른바 '기계를 만드는 기계'로 불린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