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 기업 우량등급 '인플레'

한신평, 기업 절반이 AA급…BBB급 비중은 되레 줄어
"희소성 적어 변별력 없다"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가운데서도 우량 평가를 받는 기업은 늘고 있다. AA급 이상 신용등급 비중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다. 기업 실적이 개선된 측면도 있지만 신용평가사의 '잣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5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회사채 등급(기업 · 보험금지급능력평가 포함)을 보유한 417개 기업 중 189개사가 AA급 이상에 분포해 있다. 우량 등급으로 불리는 AA급 이상이 전체의 45.4%를 차지한다. 올 들어서만 AA급 이상 비중이 3.1%포인트 늘었다. AA급 이상 우량 등급 비중이 커지면서 투자적격등급(BBB급 이상)은 갈수록 증가하는 반면 투자부적격등급(BB급 이하)은 감소하는 추세다.

2009년 초 78.8%를 차지하던 투자적격등급 비중은 이날 현재 88.2%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21.2%였던 투자부적격등급 비중은 11.8%로 떨어졌다.

다른 신용평가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국기업평가는 등급을 보유한 420개 기업 중 44.3%(186개)에 AA등급 이상을 부여하고 있다. 투자적격등급 비중은 92.9%에 달한다. 나이스신용평가의 투자적격등급 비중도 91.2%를 기록했다. 정원현 한국기업평가 평가기준실장은 "A급 상단에 위치한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우수한 실적에 힘입어 조정되면서 AA급 비중이 커졌다"며 "BBB등급은 신규 기업의 진입이 거의 없는 데다 오히려 건설사를 중심으로 자연 퇴출이 이뤄지면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아진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용등급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지적도 많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들의 실적 호조도 작용했지만 평가수수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용평가사가 기업에 대한 협상력을 잃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업 간 등급 격차가 줄면서 등급 변별력은 떨어지는 실정이다. 변정혜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등급 격차가 줄고 우량 등급에 대한 희소성이 작아지다 보니 기관이 투자 기업을 판단할 때도 등급보다 가격(금리) 메리트를 고려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